세계 4대 모터쇼 가운데 하나인 제네바 모터쇼가 지난 3일 개막해 13일까지 자동차의 미래를 보여줬다. 올해 눈에 띄는 특징은 변방에 불과했던 전기차가 주류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는 물론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 BMW와 벤츠 등도 전기차 모델을 공개하거나 전기차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국제 유가가 40% 이상 급락했음에도 가솔린이나 디젤이 아닌 전기차가 무대 중앙을 차지한 것은 전기차 시대가 그만큼 성큼 다가왔다는 의미다.

전기차 시대가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글로벌 경제에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산유국은 물론 원유 개발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내몰리면서 글로벌 경기둔화가 심화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가 다음 유가 폭락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문턱 낮아진 전기차, 대중화 시대 빨라진다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성능은 물론 가격까지 개선한 전기차모델을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해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판매한 테슬라는 ‘모델3’를 공개하고 본격 양산에 돌입한다. 특히 가격을 기존 ‘모델S’보다 2만달러 싼 3만5000달러(약 4223만원)로 책정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친환경차에 보조금을 지급해 2만7000달러면 구매가 가능하다.


제너럴모터스(GM)도 2세대 볼트를 내년부터 판매한다. 르노-닛산은 중국시장을 겨냥해 저가형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은 최근 중국 합작법인인 동팡르노 공장 가동식에서 "(중국 소비자들은) 아주 가격이 낮은 전기차를 원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며 현지 전략형 저가모델 출시 계획을 밝혔다.

독일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BMW는 순수 전기차 i3를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1만대 넘게 판매했다. 최고급 차종인 7시리즈와 미니 순수 전기차도 출시할 예정이다.


벤츠도 내년 신형 전기차모델 출시 계획을 내놨다. 디터 제체 벤츠 회장은 제네바 모터쇼에서 “독일 카멘츠에 5억4300만달러(약 6500억원)를 들여 배터리공장을 지을 예정”이라며 “2018년까지 전기차 라인업을 4개로 구성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서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공개했다.


◆2020년 전기차 유지비용, 가솔린·디젤보다 싸진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전기차와 관련된 흥미로운 보고서를 하나 내놨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배터리 가격 하락과 에너지 효율성 상승 속도를 감안할 때 오는 2020년이면 전기차 총소유비용이 일반 가솔린·디젤차보다 저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2년에는 보조금을 받지 않더라도 일반 자동차와 충분히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전기차가 자동차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다는 의미다.

2040년에는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가격이 2만200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전기차가 전체 신규 판매 자동차의 3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 B3도 전기차(일반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 판매량이 지난해 678만대에서 오는 2020년 1000만대 이상으로 연평균 3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에너지 ‘패러다임’ 바꾼다

전기차의 부상은 글로벌 에너지산업의 판도도 바꿀 공산이 크다. 변수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에너지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원유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전기차로 인해 원유 수요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유가가 다시 폭락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기차로 인해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예측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2040년까지 전기차 비중이 1%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라이언 랜스 코코노필립스 최고경영자도 전기차가 아마도 앞으로 50년간은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BNEF는 전기차 성장세를 감안하면 오는 2023년 초에는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인해 원유 수요가 하루 20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유가 급락을 초래했던 공급 초과량과 일치하는 수준이다.

BNEF는 지난해 전세계 전기차 판매가 60%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테슬라의 2020년까지 판매 증가 예상과 일치한다. 특히 1910년대 포드의 모델T 성장률과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매년 60% 성장한다는 전망은 다소 공격적이다. BNEF는 여기에 전기차 가격 하락을 반영, 다소 보수적으로 추정할 경우 2028년에 원유 수요가 20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BNEF의 살림 모지 애널리스트는 “OPEC이나 엑손이 내놓은 전망은 전기차 비중을 2%로 추정한다”며 “하지만 2040년에는 25% 혹은 50%로 전망한다”고 지적했다. 비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도 전기차 대중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은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는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도 앞당길 전망이다. BNEF의 분석에 따르면 2040년 전기차의 전기 소비는 시간당 1900테라와트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전기 생산량의 10%에 해당한다.

풍력과 태양광의 경우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저장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BNEF는 전기차가 신재생에너지 저장 역할을 할 수 있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전기차가 원유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업체들은 전기차 가격을 낮춰야 하고 장거리 여행을 편리하게 해 줄 빠른 충전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의 운전자들은 여전히 가솔린이나 디젤차를 구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발도상 국가들의 원유 수요 증가는 전기차로 인한 원유 수요 하락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