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깊기도 하다. 차가 한번씩 회전할 때마다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옛날 사람들은 어땠을까. '아리랑~ 아리랑~' 하는 구성진 가락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이곳은 정선, 아리랑과 함께 두개의 아리랑 인생을 만나본다.


정선 아우라지.

◆아리랑센터와 진용선 소장

지난 5월19일 정선에 아리랑센터가 개관했다. 정선 아라리촌 옆에 위치하며 건물 앞으로는 조양강이 크게 돌아 흐른다. ‘아리랑’이라는 단일주제로 이 큰 박물관을 어떻게 다 채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바퀴 둘러보고 나면 아리랑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았는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우리 고유의 문화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아리랑 센터는 정선아리랑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모든 아리랑을 아우른다.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공연장인 아리랑홀이 있다. 박물관 중에는 건물만 좋고 내용이 부실하거나 내용은 좋은데 보여주는 방식이 조악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자료 하나하나에서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정성이 느껴진다. 이 아리랑센터의 소장, 진용선 선생 덕분이다.


아리랑홀.

진용선 소장은 정선 토박이다. 젊은 시절 선생은 아리랑 가사를 통역하는 과정에서 큰 벽에 부딪혔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를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전의 뜻대로 하자면 ‘발병’은 ‘무좀’인 셈인데 그런 해석은 의미가 통하지 않고 단순히 ‘발에 병이 난다’거나 ‘병이 발생한다’라고 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정서가 전달되지 않았다. 이전부터 아리랑을 수집하고 연구했지만 이때부터 더 깊이 아리랑에 빠져들었다.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리랑은 팔수록 깊어지는 우물’이라고 한다.

선생은 낙향한 엘리트다. 주변사람뿐 아니라 가족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토플 강사가 안정된 수입과 집을 다 포기하고 아리랑에 빠져들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의 행보를 응원하기보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식으로 냉대하고 관망할 뿐이었다. 학교에 적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 열람도 쉽지 않았다. 아이 이유식 값이 없었고 아리랑 캠프를 진행할 곳이 없었다. 인터뷰 때마다 같은 옷이었던 이유는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내는 선생의 든든한 아군이 돼줬다.

기획전 ‘아디동블루스’는 아리랑에 대한 선생의 열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입구에 전시된 아리랑 아카이브는 키를 넘기는 택배상자들이다. 세계 각국에서 아리랑 음반과 자료를 찾아 내고 그것을 국제 우편으로 받을 때 온 포장재들이다. 이처럼 아리랑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 노래다.


한국전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에 파병 온 연합군, 각국으로 입양된 전쟁고아가 주요 전파자였다. 단순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는 가수·연주자를 매료시켰고 음반으로 발표됐다. 그 전파 과정과 결과물은 무엇이었을까. 선생은 20여년 동안 이를 찾는 데 열중했다. 우연히 카페에서 벨기에 가수 라 에스테엘라가 부른 ‘꼼 베이 메이’라는 제목의 네델란드어 노래를 들었는데 이는 큰 보물의 발견이었다. 그 노래는 분명히 아리랑이었다. 이 밖에도 미국의 노마 더글러스와 피트시거의 아리렁과 아리랑, 일본의 상술에 의해 보급된 오디동과 아리랑, 한국 김시스터즈의 아리랑 등 진귀한 자료들로 기획전을 이뤘다.

‘아디동블루스’는 오는 9월19일까지 열린다. 전시실에 내놓지 못한 자료가 아직도 많아 가을이면 1층 기획전시실은 다른 것으로 꾸며질 예정이란다.


선생은 해외 동포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도록 여러 방식으로 후원한다. 가사집을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꾸준히 연구하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전수자들이 공연하는 데 입을 한복까지 모으는 등 말 그대로 실질적인 ‘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선아리랑전수관과 홍동주 관장


‘아리~랑~ 아리~랑~ 아라아~리이이요오오~’ 장구 소리에 맞춰 ‘아리랑 아리랑’ 하다 보니 어느새 노래에 흠뻑 젖어 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어색해서 입 밖으로 소리내기도 민망했는데 이제는 제법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탁 쳐 가며 어우러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선 아우라지 물과 멀리 보이는 첩첩 산이 마치 반주를 해주는 듯하다. 생각해 보니 이곳으로 오며 지나온 굽이굽이 고갯길과 참으로 닮은 가락이다.

이번엔 박자가 빠른 엮음아리랑이다. 속사포 랩을 쏟아내듯이 가사를 탁탁탁탁 토해내고는 다시 아리랑 아리랑이 이어진다. 같은 아리랑 가락인데 장단을 빨리 하니 신명이 난다. 고갯길을 잰 걸음으로 달려오는 소년의 발동작 같다. 이곳 아리랑전수관에서 ‘아리랑 전수교실’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아리랑이 바로 이 엮음아리랑이라고 한다.


정선아리랑전수관

정선아리랑은 고려 말 유신 7명이 정선에서 은거하던 중 임금과 고향에 대한 그리운 정을 율시에 담아 부른 데서 유래한다. 지방 선비들이 듣고 한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해 알려준 것이 아리랑의 노래말이 됐다. 이것을 토착요에 감정을 살려 부르면서 정선아리랑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이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아리랑 노래 가사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계속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궁무진하다.

아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은 이곳 정선아리랑전수관의 홍동주 관장이다. 여행자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는 모습이 참으로 친근하고 말씀은 구수하다. 정선아리랑 전수자인 선생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분이다. 정선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아리랑 공연을 하고, 전수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고, 국내외 예약된 공연이 이미 올해를 넘겼다. 말씀을 나누다 보니 아리랑만 잘 부르시는 게 아니다. 상여노래(상엿소리, 만가)를 기가 막히게 부르신다. 잠시 들려주는 노랫가락을 듣자니 그 소리가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영혼을 위로하는구나. 그래서 망자가 한을 풀고 가겠구나. 그야말로 영혼의 소리다. 일찌감치 전통 장례에 다니다 보니 풍수지리를 보는 눈도 생겼다고 한다. 이뿐일까. 두메산골에 흩어져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숨은 이야기도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선생이 부르는 아리랑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아리랑이 아니다. 꺾이는 가락마다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정선아리랑에서는 강원도의 깊은 산골이 느껴진다. 그래서 전수관의 배경이 되는 아우라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배운 노래를 읊조리며 한바퀴 둘러본다. 이름도 ‘어우러진다’는 뜻의 아우라지인 만큼 물도 만나고 산도 만나고 사람도 만난다. 뱃사공이 모여들던 뗏목터와 뱃사공을 사랑한 아가씨의 마음이 노래에 절절히 실려 있고, 강가에는 아우라지 처녀의 동상이 슬프게 물을 바라본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여행 정보]

아리랑센터 가는 법

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새말IC에서 ‘안흥, 치악산, 구룡사’ 방면으로 우측방향 - 한우로 - 새말교차로에서 ‘평창, 안흥’ 방면으로 좌회전 - 서동로 - 전재터널 - 안흥터널 - 문재터널 - 방림삼거리에서 ‘정선, 영월, 평창’ 방면으로 우회전 - 서동로 - 방림삼거리에서 우측방향 - 후평사거리에서 ‘평창’ 방면으로 좌회전 - 평창중앙로 - 백오로 - 노람들길 - 서동로 ‘정선, 미탄’ 방면 - 맷둔재터널 - 미탄교차로에서 ‘백룡동굴, 미탄’ 방면으로 좌회전 - 비행기재터널 - 정선 1교 삼거리에서 ‘동해, 임계, 경찰서’ 방면으로 좌측 - 정선로 - 좌회전 - 봉양길 - 비봉로 - 봉양5리교차로에서 ‘고한, 화암, 정암사’방면으로 우측 3시 방향 - 녹송로 - 녹도길

[대중교통]
정선시외버스터미널 – 8번승차 – 농협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아리랑센터: 검색어 ‘정선아리랑센터’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애산로 51
정선아리랑전수관: 검색어 ‘정선아리랑전수관’ /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길 69

아리랑센터
관람시간: 오전 10시 ~ 저녁 6시
문의: 033-560-3030
기획전시 ‘아디동블루스’: 올 9월19까지. 장소: 아리랑박물관 기획전시실 (1층)
아리랑연구소: http://www.arirang.re.kr

정선아리랑전수관
문의: 033-560-2897
정선아리랑 전수교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 오후 3시 (방문자 예약 필수)
아우라지 관광지: http://www.auraji.net/ 아리랑전수관에서 다리를 건너면 아우라지 관광지가 조성돼 있다. 주막 촌과 야영장이 있고 뗏목타기 등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볼 수 있다.

● 카페·숙박
커피콩: 정선오일장 근처에 있는 카페이고 안쪽으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는 벽의 단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고, 공방 작품으로 꾸민 인테리어도 독특하다. 드림커피와 전통 차, 쿠키, 케이크 등이 주요 메뉴다.
문의: 010-7254-6546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보양5길 38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