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과 오두산통일전망대
저 너머 '북녘'이 지척… 서글픈 '전쟁·분단'의 상처

 

오두산전망대서 바라본 북녘. 강상에는 두 강이 몰고 온 세월이 갯벌을 이뤘다. /사진=박정웅 기자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서해로 흐른다. 함경도 마식령산맥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서남쪽으로 250㎞를 굽이쳐 돌아 나온 뒤 한강을 만난다.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 바로 앞 강상에 삼각주 모양의 너른 갯벌이 놓여 있다. 서로 만나려는 두 강이 오랜 세월 수백리 강기슭의 흙과 모래를 실어 온 흔적이다. 물때에 따라 그 얼굴은 내밀고 숨고를 반복한다.

강은 지리적 경계가 된다. 임진강은 지역을 나누는 단순한 경계 이상의 것이었다.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예로부터 세력 간 격전이 끊이질 않았다. 고구려 광개토왕은 임진강에서 백제군을 대파했다. 나중에는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려던 신라 진흥왕이 이 강을 점령했다. 고려는 임진강 북쪽 개성에 자리를 틀었고 조선은 강 건너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며 개성시대를 정리했다.


임진강은 반목과 갈등의 상징으로 익숙하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뼈아픈 상처와 비극은 강 곳곳에 퇴적해 있다. 파주의 서쪽, 한강과 만나는 임진강 하류의 상흔이 도드라진다. 대표적인 곳이 임진각국민관광지와 오두산통일전망대다.

피탄 흔적이 역력한 장단역증기기관차. /사진=박정웅 기자




◆'철마는 달리고 싶다지만'

새해 첫날, 문산행 경의선에 자전거를 싣고 임진강을 찾았다. 문산역에서 지방도를 따라 임진각국민관광지로 향했다. 도로는 녹은 눈과 제설재가 뒤엉킨 살얼음판이었다. 임진각관광지에 다다르자 해돋이 감상을 마친 라이더들이 오와 열을 맞춰 남쪽으로 향했다.


임진각관광지는 요즘 청소년에겐 이름이 낯선 '철마'로 유명한 곳이다. 남북 관련 홍보물의 단골 멘트인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인 옛 증기기관차가 이곳엔 2대나 있다. 하나는 관광지 초입 경의선 중단점의 기관차(미카3244호)다. 이 기관차는 1930년대 모습을 197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또 다른 기관차는 온갖 대소구경 탄환을 온몸으로 받아낸 채 녹슬어온 '장단역증기기관차'다.

장단역증기기관차는 1950년 12월 장단역 인근에서 폭격을 맞았다. DMZ 안에서 50년 이상의 풍찬노숙 끝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1020여개의 피탄 자국을 간직한 기관차는 2004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8호로 등록됐다. 그렇다면 장단역은 어디쯤에 있을까. 먼저 파주의 명물인 장단콩이 떠오른다.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는 행정구역 상 파주시 장단면이 있다. 바로 코앞 임진강 건너편이다. 장단역은 한국전쟁 전 황해도 장단군의 한 역이었다. 장단군은 군사분계선으로 나뉘면서 운명이 다했고 면 단위 일부가 파주시에 귀속됐다. 그래서 피탄의 녹슨 기관차도 아프고 장단역이란 역명까지 서글프다.

임진각(경기평화센터) 3층 전망대에 올랐다. 임진강은 눈 덮인 얼음바다였다. 임진강에는 2개의 경의선철교가 있다. 상하행선 복선 철교였는데 전쟁 중 둘 모두 폭격을 맞아 교각만 남았다. 이중 서쪽 철교만 휴전협정 후 새롭게 보강했다. 이 서쪽 철교와 '자유의 다리'를 통해 한국군 포로 1만2773명이 귀환했다.


임진각에서 바라본 전경. 임진철교 중 왼쪽이 새로 보강됐고 오른쪽은 교각만 남았다. 자유의다리 앞쪽엔 망배단이, 오른쪽엔 장단역기관차가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긴장감 없는 분단의 최전선



자유의 다리가 어긋난 형태로 서쪽 철교와 머리를 맞댄 이유가 여기 있다. 자유를 찾아 귀환한 의미가 깊어 경기기념물로 지정됐다. 임진각 망배단은 설이나 추석이면 실향민이 고향을 향해 절을 올리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이날 역시 많은 이가 망배단을 찾았다. 임진강관광지에서의 팁 하나.

"북한이 강 건너 코앞인데 긴장감이 없네요."

이날도 이런 의문을 품은 이가 많았다. 관광지와 임진강을 겹겹이 에워싼 철책과 사진촬영을 제한하는 분위기가 이런 오해를 부른다. 눈에 들어온 강 건너편은 민통선 구역인 파주시 장단면이다. 북녘은 강을 건너야 볼 수 있다. 경의선 철교를 지나면 도라산역이고 여기까지 가야 북한을 마주할 수 있다.

또 다른 팁 하나. 임진강 건너 도라산역을 가려면 특별한 프로그램에 따라야 한다. 하나는 기차를 이용한 코레일의 '디엠지(DMZ) 트레인'이다. 용산역에서 매일 한차례 출발하는 관광열차다. 또 다른 방법은 경기도 버스투어인 '디엠지 안보관광'이 있다. 아울러 '파주시티투어'도 좋다. 교통편의는 물론 제3땅굴, 도라전망대, 통일촌 등을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어 편리하다. 민통선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신분증이 꼭 필요하다.

임진각관광지는 가족여행지로 손색없다. 경기도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다. 임진각 경기평화센터, 전망대, 망배단, 전적비, 위령탑, 철도중단점, 장단역기관차, 자유의 다리, 평화의 종 등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의 흔적을 두루 살펴볼 수 있어서다. 평화누리공원은 아이들이 맘껏 뛰노는 공간으로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하늘로 솟구치는 기러기 떼. /사진=박정웅 기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북녘



자전거 두 바퀴가 임진각을 뒤로한 채 남쪽으로 구른다. 걷기 길과 자전거 길을 겸한 평화누리길에 올라탄 자전거는 새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목적지는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통일전망대다. 반구정(伴鷗亭)까진 교통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한적한 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은 철책이 둘러쳐진 임진강이다. 빈 들판엔 기러기 떼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카메라에 담으려 자전거를 멈췄더니 화들짝 놀라 하늘로 솟구친다. 미안한 마음 이를 데 없다.

반구정은 청백리 황희 정승(1363~1452년)의 유적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새해 첫날 휴관이다. 황희 정승은 최장수 영의정이다. 세종대에 무려 19년간 국무총리를 지낸 재상이다. 그의 후손들은 선비의 기개를 강조한 '청백리'를 앞세우나 황희 정승은 처세와 조율의 대가였다. 편 가름 없이 이쪽저쪽의 뜻을 두루 살핀 탁견으로 고려 말과 조선 초 여러 요직을 맡다 무려 87세에 영의정의 옷을 벗었다. 시대가 바뀌는 격랑에도 구순(九旬·90세)의 장수를 누렸다.

반구정은 관직에서 물러난 황희 정승이 머문 곳이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암절벽 위에서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이다. 실제 이곳에는 갈매기가 많이 모인다. 휴관의 아쉬움을 달래려 황희묘를 찾았다. 황희묘는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선영에 있다.

헤이리를 지나면 오두산통일전망대다. 헤이리부터는 자전거도로가 있다. 통일동산 바로 옆 야산에는 전망대로 향하는 걷기 길도 있다. 국가대표 축구팀 트레이닝센터(파주 NFC)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오른쪽에 전망대로 향하는 도로가 나온다. 해발 119m의 산이라고 만만하게 보면 오산이다. 영하의 날씨였던 새해 첫날 구슬땀을 쏟아야 했다.

오두산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녘을 살피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해바라기하는 북한 주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선 북녘이 지척이다. 이쪽과 저쪽은 고작 460m 거리, 손에 잡힐 듯하다. 그만큼 양측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휴전선 155마일 중 비무장지대 폭이 가장 짧은 곳이다. 전망대는 오두산 정상에 있어 북녘 땅이 눈에 잘 들어온다. 전망대 3~4층은 공사 중이다. 하지만 2층 난간 또는 1층 야외(조만식 선생 동상)에 설치된 망원경으로도 충분했다. 그만큼 가깝다.

서로 가장 가까운 곳은 이쪽과 저쪽의 초소(OP) 사이다. 강 쪽으로 돌출된 자리에 선 초소는 누구보다 임진강의 시간을 잘 알고 있으리라. 건너편 민둥산을 배경으로 농촌마을이 자리를 틀었다. 양지바른 곳엔 해바라기하는 마을 주민 모습이 어렴풋하다. 탈곡장, 김일성사적관, 인민문화관, 임한소학교가 차례로 눈에 띈다. 민둥산 너머 경기 오악(五岳)의 하나인 송악산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오두산 바로 아래는 두물머리다. 북쪽의 임진강, 남쪽의 한강이 만나 서해로 향한다. 각각 북쪽과 남쪽의 발원지에서 흘러온 두 물줄기는 지나온 세월을 게워 내 갯벌을 만들었다. 두 물은 다시 예성강을 끌어들여 더 큰 줄기가 돼 서해로 나간다. 서로를 유혹하는 남북의 선전방송은 강을 못 건넌 모양이다. 겨울 강바람에 먹혀버린 듯 웅웅거리다 강물에 빨려 들어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2호(2018년 1월10~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