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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戊戌年) 새해 재계의 표정이 어둡다. 2016년 말 정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의 후폭풍이 올해까지 이어지며 재벌 총수를 비롯한 주요기업 경영인들이 연초부터 줄줄이 법정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피의자가 아닌 증인신분으로 출석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덜하지만, 재판 연루만으로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다 미국의 통상압력 강화와 우리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규제성 정책 추진 등 대외 환경 변화도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끝나지 않은 국정농단 악몽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등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22부는 이달 초부터 주요 기업 총수와 전문경영인들을 잇따라 증인으로 소환하고 있다.
이달 8일 손경식 CJ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으며 11일에는 구본무 LG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허창수 GS 회장을 부를 예정이었지만 이들 4명이 모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함에 따라 날짜를 다시 조율하고 있다. 15일에는 신동빈 롯데 회장의 증인 신문이 예정됐다.
총수들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들도 법정에 선다. 지난 4일에는 금춘수 한화 부회장이 증인 신문을 받았다. 이어 9일에는 김창근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박영춘 SK수펙스추구협의회 팀장(부사장) 등의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이들 기업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십~수백억원대 출연금을 납부한 업체로, 검찰은 기업의 출연금 납부 경위를 집중적으로 캐묻는다는 방침이다.
증인으로 나서는 기업인들은 출연금 납부가 청와대의 강요와 압박 때문이었다고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검찰은 최순실 씨 등을 기소하면서 각 기업이 두 재단에 납부한 금액을 ‘갈취금’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이번 법원 출석 이유는 증인 신문이기 때문에 경영공백이나 오너리스크 등의 위험은 제한적이지만 기업으로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A기업 관계자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더라도 ‘정경유착’의 낙인이 찍힌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며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기업 신뢰도나 이미지 등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된다”이라고 토로했다.
B기업 관계자도 “국민의 눈이 쏠린 사건이라 부담감이 큰 게 사실”이라며 “증인으로 출석한 경영인의 발언 등이 집중 부각되거나 또 다른 이슈를 만들어낼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국 산업 ‘군기’ 잡는 미국
기업들의 대외 경영환경도 좋지 않다. 가장 큰 현안은 미국의 통상압력 강화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국 반도체산업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넷리스트, 테세라, 비트마이크로 등 미국 반도체업체가 잇따라 ITC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한 데 따른 조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세계 D램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 합계는 72.3%에 달한다. 낸드플래시 메모리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계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등 양사는 사실상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미국 기업들이 자국 산업보호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기대 한국 기업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ITC는 이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생산하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향후 3년간 매년 120만대를 초과하는 물량에 1년차 50%, 2년차 45%, 3년차 4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 결정만을 앞두고 있다.
반도체, 세탁기 외에도 한국산 태양광 모듈, 합성수지, 철강제품 등에 미국의 검열이 강화되고 있으며 한미FTA 재협상도 한국 산업 전반에 걸친 통상압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기업 옥죄는 정책 난립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기업의 경영환경을 옥죄는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올해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지난해 6470원보다 16.4%나 올랐다.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 등으로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의 피해를 막는다는 방침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상여금, 복리후생수당 등이 임금에 포함되도록 산입범위를 합리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법인세법 개정안도 올해부터 시행돼 77개 대기업이 3000억원 초과 과세표준 구간에 대해 최고 25%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밖에 노동이사제 도입,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도 줄줄이 시행될 전망이다.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는 반면 투자를 유도하는 규제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기업관련 법안 1000여개 중 690여개가 규제성 법안이다.
이 때문에 재계는 사실상 기업의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규제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연일 호소 중이다.
정부의 공식 경제파트너로서 정부 정책을 보조해온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쓴소리를 내며 규제개혁을 촉구했다.
박 회장은 최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그게 과연 옳은 규제인가”라며 “규제개혁이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회자됐는데도 변화가 없으니까 둔감해진 것 같은데 이건 정말 심각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낡은 규제는 이제 없앨 때가 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2호(2018년 1월10~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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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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