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날씨가 춥고 기온의 변화가 심하면 열이 나고 기침이 날 때 으레 ‘감기’려니 한다. 굳이 병원에 가지 않고 동네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먹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심한 감기몸살에 비해 미열증상이 1주일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으면 다른 원인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7일 노량진 학원가의 한 학원생이 결핵판정을 받자 질병관리본부에서 접촉자를 대상으로 결핵 검사를 실시했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잠복결핵 적극 치료해야

가래가 나오는 마른기침으로 변하고 발열과 함께 식은땀,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2주일 넘게 지속되면 반드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한다. 비슷한 증상이 결핵에서도 나타나는데 그 사실을 잘 모르고 병원에 가는 시기를 늦추면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


결핵균에 감염됐더라도 면역기전에 의해 평생 발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결핵균이 잠복해 있음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1~2년 지난 후 과로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면역력이 저하될 때 증식하면서 활동성으로 변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으로는 결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정밀검사를 받아야 알 수 있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결핵에 걸린지 모를 수 있고 그 상태로 돌아다니면 나중에 결핵 확진을 받기 전까지 평균 20명에게 결핵균을 퍼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과에 가서 원인 불명의 기침·가래가 2주 이상 계속됐다고 말하면 일단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권한다. 흉부 엑스레이 촬영사진의 음영 변화를 관찰해 결핵이 의심되면 객담검사를 통해 배출되는 가래에 결핵균이 들어있는지 확인한다. 컴퓨터 단층촬영(CT)이나 기관지 내시경도 결핵 확진에 활용된다.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 앗아간 ‘결핵’


한의학에서는 결핵을 ‘노채’라고 지칭했는데 오래 전 삼국시대 의서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과 신동훈 교수팀은 조선시대 무덤에서 발굴한 350년 전 중년 여성의 미라를 2016년 1월 전산화 단층촬영해 결핵 감염 증거를 처음 발견했다. 그 미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결핵 사망환자로 추정된다.

인류 역사에서는 구석기시대인 기원전 수천년 전 사람 뼈의 화석과 이집트의 미라에서 결핵의 흔적이 발견됐다. 고대 아시리아의 중동지역 점토판에는 잦은 기침, 창백하고 차가운 피부, 피가 섞인 가래 등 결핵 증상을 묘사한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결핵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 존속하는 질병으로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이다.


감염성 질환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결핵 사망자이며 최근 200년 동안 약 10억명이 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의 몸 여러 군데가 까맣게 썩어 들어가며 죽어간 병이 ‘흑사병’(페스트)인 것처럼 결핵에 걸린 환자는 창백해지기 때문에 ‘백색 페스트’로 불리기도 했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D.H. 로런스는 결핵으로 죽음이 다가온 것을 예감하며 쓴 시 <죽음의 배>에서 “죽음의 배를 만들어라. 너는 망각으로 가는 가장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이미 우리의 육체는 추락하여 상처입고 영혼은 새나가고 있다”라고 했다.

작가인 안톤 체호프, 에밀리 브론테, 프란츠 카프카, 조지 오웰, 이광수, 이상, 김유정을 비롯해 가수 김정호, 배우 비비안리, 음악가 쇼팽 등 문학과 예술분야의 저명인사가 결핵으로 고통받다가 사망했다.

역설적으로 소설, 영화, 오페라 등 예술 작품 속에서는 결핵이라는 참담한 질병으로 인한 주인공의 죽음을 흔히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푸치니의 <라보엠> 여주인공 미미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여주인공 비올레타도 사랑하는 남자 곁에서 결핵으로 죽으면서 오페라의 막이 내려진다.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에는 결핵환자가 애정결핍과 불안, 고독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결핵균은 탄저균, 콜레라균 등을 발견해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의사이자 미생물학자 코흐가 1882년 현미경으로 처음 확인해 1905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확실한 치료법은 없어 환자를 요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20대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죽은 사람도 많다. 1950년대에 스트렙토마이신을 비롯한 여러 결핵 치료약이 계속 개발되면서 드디어 극복 가능한 질병이 됐다. 사람들 영양 상태와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면역력이 강해져 결핵에 감염되는 사람 수도 줄어들었다. 결핵은 사망률이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절반으로 줄었으나 여전히 세계인을 죽음으로 이끄는 주요 질병 가운데 하나다.

◆후진국 질병이지만…

결핵은 국민소득이 낮은 가난한 나라에서 많이 발생해 후진국 질병으로 여겨진다. 북한 역시 결핵 감염이 매우 심각해 인구 10만명당 결핵발병률(2015년)이 아프리카의 스와질랜드, 모잠비크 등과 비슷한 561명으로 세계 4위에 올랐다. 한국은 경제수준이 세계 상위권에 들어섰고 주거 환경의 위생이 양호해졌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는 발병률이 가장 높다.


서울시 취약계층 무료 결핵검진.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015 세계 결핵 현황’에 따르면 한국의 결핵발병률은 인구 10만명당 80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포르투갈(23명)과도 큰 격차를 나타냈다. 발병률이 OECD 평균의 7배에 달하며 미국보다 25배나 많다. 결핵사망률도 2위인 칠레(2.7명)의 약 2배인 5.2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결핵 약에 내성을 지녀 치료가 잘 안되는 환자 수 부문에서도 한국은 불명예스럽게 1위다. 그나마 결핵 신규 환자수가 2015년 3만2181명에서 2016년 3만892명으로 1289명 감소하면서 전체 결핵환자수는 약간 줄어들었다.

반면 감염이 일어나기 쉬운 보육시설, 학원, 학교, 군부대, 의료기관 등에서 결핵이 계속 발생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지난해에는 24개월 전후 영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교사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보건당국이 동료교사와 원아들을 상대로 역학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의 일부 공공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잇달아 결핵에 감염되는 사건도 수년간 여러 차례 발생했다. 고등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집단 결핵에 걸린 사실이 드러나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선 적도 있다.

◆학생에 드리운 결핵 그림자

결핵환자 발생이 보고된 고등학교는 3년간(2013~2015년) 전체 고교 2300여곳의 절반에 가까운 1093곳이나 됐다. 이 기간 중복감염을 제외하고 결핵에 걸린 전체 고교생은 1166명이었다.

지난해 연말에는 매일 수만명의 수험생이 오가는 노량진 학원가에 결핵 확진 환자가 또 발생해 감염 확산이 우려됐다. 노량진 학원가는 오랜 시간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특성상 전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밀집한 학원에서 마스크를 쓴 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하니 이런 것에서도 사람들의 ‘안전불감증’이 드러난다. 자신의 안전은 우선적으로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면서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2016 결핵 환자 신고현황'에 따르면 결핵신환자 3만892명 중에 젊은이에 비해 면역력이 저하된 70대가 5459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20대(3179명)와 30대(4028명)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전체 결핵신환자의 상당수를 청년들이 차지한다. 10대에서도 결핵신환자가 852명이나 나타났다.

즉 젊다고 건강에 자신하지 말고 나이에 상관없이 몸 관리를 잘하는 생활태도가 필요하다. 가공식품을 줄이면서 균형 잡힌 식단으로 충분한 영양섭취를 해야 한다. 또 겨울에는 실내에만 있지 말고 실외활동과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추울 때도 가끔 창문을 열고 탁해진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4호(2018년 1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