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랭글러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도심 도로에서는 단순하고 불편해 보이던 차가 오프로드에 들어서면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수박만한 돌이 널린 곳이나 물살 거센 계곡도 거뜬히 헤치고 나간다. 그냥 잘 가는 게 아니다. 편안히 속도를 즐길 수 있다. 오죽하면 오프로드 스포츠카라는 별명까지 생겼을까.
이처럼 뛰어난 오프로드 주행능력과 단순함이 매력이던 지프 랭글러가 첨단 디지털기술을 입고 새롭게 태어났다. 무려 11년 만에 완전변경모델로 거듭난 지프 브랜드의 아이코닉카 ‘랭글러’. 국내 출시 및 시승행사도 평범하지 않았다. 지난 8월21일 강원도 평창 흥정계곡 내 ‘랭글러 밸리’에서 진행된 올 뉴 랭글러 출시 행사는 1941년 윌리스MB에서부터 2차 세계대전을 관통해 77년간 이어져온 오프로드 헤리티지를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랭글러의 개성을 최대한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올 뉴 랭글러 /사진=FCA코리아 제공 ◆최강 오프로더를 경험하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신형 랭글러 중 가장 비싼 ‘사하라’다. 랭글러 차종 중 그나마 온로드를 지향하는 모델이다. 랭글러 루비콘에 들어있는 스웨이바 분리장치나 후륜 축 잠금장치 등의 기능이 빠졌음에도 가장 험난한 오프로드 테스트로 꼽히는 미국 ‘루비콘 트레일’을 통과하며 트레일레이티드 등급을 획득했다.
시승은 휴대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흥정계곡을 따라 와인딩 온로드, 오프로드 업 힐, 락 크롤링(Rock-Crawling), 다운 힐 코스로 구성된 12km 왕복 구간에서 진행됐다. 산 넘고 물 건너며 차의 성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구간이다.
먼저 흥정계곡 오토캠핑장에서 출발, 흥정산으로 이동하는 온로드 코스는 마을길과 국도를 주행하는 코스다. 이곳에서는 구형과 비교해 크게 개선된 온로드 성능을 체험하기에 좋았다.
특히 걸걸대던 이전 세대의 큰 엔진과 달리 최신형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터보엔진을 탑재한 덕분에 주행 시 엔진룸에서 넘어오는 소음이 크게 줄었다. 일반적인 도로에서 데일리카로 타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최고출력은 272마력(PS)이며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다.
또 앞유리 각도 조절과 냉각기술 등 여러 이유로 이전 모델과 비교해 연료효율성이 최대 36% 개선됐다는 게 회사의 설명.
올 뉴 랭글러 /사진=FCA코리아 제공 온로드에 이어 흥정산의 비포장도로를 통해 산길을 올라가는 3km 오프로드 업 힐 코스. 평소엔 막힌 길이지만 이번 행사를 위해 잠시 개방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만큼 중간중간 급경사를 가로지를 일이 잦았다.
처음엔 가벼운 오프로드여서 일반적인 사륜구동모드를 유지했지만 35~45도의 경사가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4L(사륜 저단기어)로 변경, 사뿐히 오프로드를 돌파했다. 한층 더 개선된 크롤비(77:1)로 누구나 쉽게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기존 유압식에서 전자식유압스티어링으로 바뀌었는데 중간에 설치한 볼베어링이 노면의 충격을 흡수해 오프로드에서도 운전대를 조작하기가 쉬웠다.
이후 산을 내려오는 코스에서는 이번 시승의 하이라이트인 ‘락 크롤링’을 체험했다. 이 구간에서 운전은 전문 인스트럭터가 대신해야 해서 아쉬웠지만 대신 다른 차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었다.
락 크롤링 구간에서는 정해진 길이 아니라고 무턱대고 들이대면 안된다. 엉금엉금 커다란 돌을 밟고 계곡을 지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랭글러의 진입각은 최대 36도, 램프각은 20.8도며 이탈각은 31.4도나 된다. 경사나 장해물을 헤쳐나갈 때 웬만해선 차체가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의미다.
중간중간 만나는 깊이 40~60cm쯤의 물길도 거뜬했다. 이 차는 성인 허리 높이에 달하는 최대 수심 76.2cm의 도하능력을 갖췄다.
한가지 더. 랭글러의 매력은 지붕을 뜯어내기가 쉽다는 점이다. 고정 핀 4개만 해제하면 바로 오픈에어링을 즐길 수 있다. 차 프레임에 매달려서 바퀴쪽 장애물을 살피기도 유리하다.
올 뉴 랭글러 사하라 인테리어 /사진=FCA코리아 제공 ◆11년만에 변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
완전히 새로워진 랭글러는 헤리티지에 충실한 현대적 디자인, 독보적인 오프로드 성능, 손쉬운 개방감, 새로운 파워트레인으로 향상된 연료효율성, 크게 개선된 온로드 주행성능은 물론 안전 및 첨단기술이 특징이다.
디자인은 1945년 출시된 ‘CJ’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평이다. 7-슬롯 그릴과 그 양쪽에 동그란 헤드램프를 갖췄다. 이전 세대에는 헤드램프 아래 방향지시등과 안개등을 넣었지만 신형은 헤드램프 옆 휠하우스 앞에 LED주간주행등과 방향지시등을 설치했다. 그리고 범퍼 양 바깥쪽에 안개등을 달아 멋은 물론 더욱 커보이는 효과를 낸다. LED 사각 테일램프도 랭글러만의 독특한 디자인 요소다.
올 뉴 랭글러에는 75가지의 첨단 안전 및 주행보조장비가 탑재됐다. 기존 모델에 적용된 크루즈 컨트롤, 전자제어 전복방지(ERM), 내리막길 주행제어장치(HDC)는 기본, 사각지대 모니터링시스템(BSM), 후방 교행 모니터링 시스템이 새롭게 적용됐다.
올 뉴 랭글러 인테리어 /사진=FCA코리아 제공 아울러 스마트폰과 연동성을 높인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가 적용됐고 블루투스 통합 음성명령 기능과 8.4인치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차세대 유커넥트 시스템으로 연결성과 편의성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사하라 모델에서는 온로드 주행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시스템(Active Noise Control System), 프리미엄 가죽 I/P 베젤, 9개의 알파인 프리미엄 스피커를 적용했다.
랭글러는 지난해 23만4990대의 글로벌 판매량을 기록했고 올해도 두자릿수 성장이 기대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1013대보다 40.6%가 늘어난 1425대가 팔렸다.
올 뉴 랭글러 /사진=FCA코리아 제공 FCA코리아는 크라이슬러와 피아트 등 다른 브랜드 대신 지프 브랜드에 집중하며 전용 매장을 늘리는 중이다. 지프 판매량을 더욱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 이런 이유로 이번 올 뉴 랭글러를 출시하면서 3.6ℓ 모델 대신 대중성을 강조한 2.0ℓ 모델만 들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