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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국민연금-중] 수익률 제고, 의결권 강화 ‘뒷전’
국민연금에 의결권 행사 권한이 부여된 건 2005년, 10년 뒤인 2015년 삼성-엘리엇 사태가 불거졌을 때 국민연금은 3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는 외부 기관의 반대 결정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연금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급격히 전환하기 어려운 만큼 지분보유 기업에 대한 의결권 강화로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해 오롯이 수익률 제고에 집중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맘대로 팔지 못하는 주식 124조원
지난 8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은 38%며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는 124조7000억원(19.5%)을 투자하고 있다. 핵심 투자처는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31조5100억원), SK하이닉스(5조5600억원), 포스코(3조2100억원), 네이버(3조1000억원), 현대차(2조9000억원) 등이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은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되는 기업지분을 대거 처분하고 안전자산, 대체투자 등으로 갈아타는 방법이나 지분보유 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안 등이 있다.
보험사의 경우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국민연금보다 수익률이 나쁘지 않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주식 비중을 대폭 낮추는 ‘월스트리트 룰’(의결권 행사보다 해당주식을 매도해 기업에 대한 평가를 대신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국내 보유 주식이 12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대거 지분을 처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단기간에 지분을 사고팔아 차익을 남길 경우 단기매매차익 반환제도(주요주주가 6개월 이내 주식을 거래하고 차익이 발생할 경우 해당 법인에 반환토록 하는 제도)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은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강화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기금운용은 보건복지부 산하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5개년 투자전략 방향에 따라 운용한다”며 “기금위가 제시한 운용원칙에 맞춰 주식이나 채권 투자 비중을 맞추는데 투자원칙상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은 기금운용에 좋지 않다고 판단해 갑자기 주식을 사고파는 것는 어렵다”고 밝혔다.
2005년 기금관리기본법이 개정되면서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또한 상장기업 지분을 5% 이상 취득하거나 5% 이상 기업의 지분율 변동이 있을 경우 공시하도록 증권거래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2013년 9월에는 개별종목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개정됐다.
문제는 도입 10년 만에 의결권 행사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미국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등장하자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율을 1%포인트가량 높이는 등 삼성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합병 가능성을 높게 봐 수익성을 따졌다면 합병비율(삼성물산:제일모직= 1:0.35)상 옛 제일모직 지분을 늘리는 것이 논리에 맞다. 결국 국민연금은 3000억원 규모의 평가손실을 입으면서까지 삼성을 위해 합병 시너지 자료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국민의 노후자금을 담보로 사기업을 지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올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도 국민연금은 또 다시 캐스팅보트 역할을 부여받았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 글래스루이스 등이 반대표 행사를 권고했고 국민연금이 자문을 구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역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대신 최종 의결권 여부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에 넘겼지만 이후 현대모비스가 주주총회 개최를 취소하면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중단됐다.
◆스튜어드십 코드 우려하는 기업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이는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으로 ‘월스트리트 룰’과 반대되는 의사결정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내에 2016년 말 도입됐지만 국민연금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다가 지난 7월에야 도입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강화할 경우 자칫 ‘정부 의지대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정부 방침이 친기업 기조가 아닌 만큼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큰 기업의 경우 이런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삼성·현대차 등 국민연금 지분규모가 큰 기업 다수가 지배구조 개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은 순환출자 구조 해소 이슈가 남아 있고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한다. SK는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한 중간지주사 설립 이슈가 있고 네이버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공방을 벌이다 ‘총수가 있는’ 기업으로 판정됐다. 포스코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며 여전히 정부 입김이 강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경영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해 시장을 교란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의 경쟁력 강화나 주주가치 제고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상엽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정부 입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지배구조 이슈가 있는 기업은 부담이 클 수 있다”면서도 “과거와 달리 긴장을 한다는 점이 주주 및 기업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제한보다는 제도개선이 뒷받침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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