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부유한 사람이 재산을 믿고 교만할 경우 그가 재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기 전에는 그를 칭찬하지 마라.”
소크라테스가 2500년 전에 한 이 말은 최근 ‘폭행동영상 사건’으로 구속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에 딱 들어맞는다. 양 회장은 ‘돈의 힘’을 믿고 전직 직원을 사무실로 불러 뺨을 때리고 회사 수련회 도중 동물을 학대했으며 마약에도 손을 대는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이 폭로되기 전까지 그는 ‘성공한 벤처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사로운 욕심에 빠지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 탐사(貪私)에 빠지면 깨끗한 마음이 오염되고 더러워져 평생 인품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옛사람은 탐내지 않음을 보물로 여겨 한 세상을 보냈다”
서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은 <채근담>에 나오는 글귀가 뼈아플 것이다. 그는 이 학교에 다니던 쌍둥이 딸의 내신 성적을 좋게 하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시험지를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쌍둥이 자매도 결국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당하고 전과목 성적이 0점 처리되는 비극을 연출했다.
◆먼저 사람이 되지 않으면 패가망신 지름길
양진호 회장과 숙명여고 사건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다’는 왜곡된 가치관과 ‘도둑질을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좋다’는 ‘일류병’이 그것이다.
사람이 되기 전에 돈만 많아지면서 불행해진 사례는 매우 많다.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이후 온 가족이 천박한 갑질논란에 휩쓸린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대표적이다. 송나라 천재로 유명했던 사마광이 <훈검시강>에서 “소인이 욕심이 많으면 많이 요구하고 제멋대로 써 패가망신한다”고 지적한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공자와 자공도 ‘부자의 교만’을 경계했다. 자공이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것은 어떠냐”고 묻자 공자는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면서 즐거워하고 부유하지만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논어> 학이편)”고 대답했다. 돈 많다고 뻐기면서 사치하면 자신을 망치지만 교만하지 않으면 손가락질은 면한다. 한발 더 나아가 예를 알아 나눌 줄 알고 겸손하면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욕심은 사람이 가진 ‘일곱가지 감정’(喜怒哀樂愛惡慾)의 하나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공통된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욕심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공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선에서 제약돼야 한다. 사욕은 자신은 물론 공동체에까지 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사욕을 경계한 교훈으로 노나라 재상 공손휴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물고기를 즐겨 먹었다. 재상이 된 뒤 여러 사람이 물고기를 선물로 보내자 받지 않았다. “나는 물고기를 즐기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 사사로이 물고기를 받는다면 그것 때문에 직장을 잃을 수 있다. 그러면 녹봉이 없어져 좋아하는 물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뇌물을 먹다 잘리는 것보다 정직하게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게 낫다는 말은 지금도 되새길 만하다.
욕심을 경계한 것은 <성서>에도 나온다. 출애굽기 ‘모세 십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마라”(10번째)와 “도적질하지 마라”(8번째) 등 탐욕과 도둑질을 비중 있게 다룬다.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정신’이라고 강조한 것도 근면과 정직이었다. 베버의 사상적 스승이었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달력에 적어놓고 평생 지켰던 격언이 바로 “정직이 최선의 정치”였다.
◆품격 있는 문화국가를 위해
양 회장과 숙명여고 사건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법과 도덕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사건이 불거진 뒤 그들은 구속돼 법의 심판을 기다린다. 만시지탄의 아쉬움은 있지만 법을 통해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법은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난 뒤에 벌주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면 어느 정도의 예방효과가 있지만 말로만 고친다고 했다가 금세 잊고 비슷한 일을 되풀이한다.
반면 도덕은 나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예방효과가 크다. 양심에 비춰 몸에 체득한 도덕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덕은 몸으로 얻은 득과 통한다.
공자는 이런 법과 도덕의 관계를 <논어> ‘위정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치로 백성을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이 피하기는 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워하고 품격이 있다.”
공자의 이 말은 덕과 예로써 공동체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되 그런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탈행위를 할 경우엔 법과 형벌로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도덕 중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게 하지 말라(<논어> 위영공편)”는 공자와 “윗사람에게서 싫다고 느낀 것을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말며…(<대학> 혈구지도)”라고 강조한 증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성서> 마태복음)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예의염치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제나라 환공을 춘추오패 중 첫번째 패자로 만들었던 관중은 “나라를 다스리고 부흥시키는 데 예의염치(禮義廉恥)라는 4가지 기둥이 필요하다”며 “한 기둥이 없으면 기울고 두 기둥이 없으면 위태롭고 세 기둥이 흔들리면 엎어지며 네 기둥 모두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양 회장과 숙명여고 사건에서 대한민국이 예의염치를 모두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갖게 된다. 이는 ‘사람됨’보다는 ‘지식’과 ‘돈’을 앞세우고 학생과 사회인을 한줄로 세우는데서 만들어진 고질병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병균이 고황(膏肓; 심장 끝 지방과 횡경막 사이)에 이르러 그 어떤 명약과 명의로도 고칠 수 없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동방 농경문화의 예방적 도덕과 서방 유목문화의 법과 형벌을 아우르는 패치워크(짜깁기, 접붙이기) 가치체계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 공동체 무너지는 소리가 대문 앞까지 다가왔다. 나와 우리 가족을 위협하는 범죄의 시대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
-
홍찬선 전 머니투데이 편집국장
자본시장과 기업을 취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