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다본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기름기가 풍부한 자작나무가 불에 타면서 나오는 소리의 의성어인 ‘자작자작’에서 따온 이름이다. 한자로는 ‘백화’(白樺)로, 흰 백(白)에다 자작나무 화(樺)를 썼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는 남방한계선이 북한에 있다. 따라서 식생대는 북한의 추운 산간지방, 만주벌판, 시베리아, 북유럽에 걸쳐 있다. 강원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자연적으로 자란 것이 아니다. 자작나무가 남방한계선을 넘어와 숲이 조성된 곳은 원대리가 처음이다. 이후 바로 옆 수산리에도 조성됐다.
자작나무에 내린 햇볕.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원대리의 원래 주인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였다. 재선충으로 인해 소나무가 말라죽자 모두 베어냈다. 그 자리에 빨리 자라는 자작나무를 심으면서 오늘의 자작나무 숲을 이룬 것.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1974~1995년 20여년에 걸쳐 자작나무 70여만 그루를 조림해 만들어졌다. 대부분 30년을 넘어서면서 나무의 키가 20~30미터에 달하는 순백의 숲이 만들어졌다. 하얀 자작나무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세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한없이 빠져든다.
◆외고개,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다
자작나무 숲길로 들어가는 입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숲에 들어가는 입구는 원대리와 남전리를 잇는 외고개에 있다. 하얀 눈을 기대했지만 올 겨울은 기온이 유난히 높아 눈이 박하다. 며칠 전 내린 눈에 혹여 기대를 해보지만 눈은 이미 녹아 겉치레만 할뿐이다. 그렇지만 껴입은 옷 속으로 추운 바람이 파고드는 걸 보니 역시 겨울이다.
자작나무 숲길의 시작점엔 숲길 안내소가 있어 오전 9시가 돼서야 출입을 허용한다. 두 갈래길 중 윗길인 원정임도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임도 우측으로는 자작나무 숲길 등산코스가 있지만 겨울이라 미끄러워 안전을 위해 출입을 금지했다. 등산로로 오르는 것은 내년 봄을 기약한다.
원적임도에 있는 하트 조형물.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길에 듬성듬성 보이는 자작나무가 햇볕에 하얀 몸을 드러내며 객을 반긴다. 아직 본격적인 자작나무 숲이 아닌데 몸은 앞을 달린다. 마음은 벌써 자작나무 숲으로 달려가며 발걸음도 빨라진다. 몇개의 작은 전망대와 나무의자가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당긴다.
◆자작나무 숲에 들다
좌측으로 보이는 자작나무 숲 진입로에 들어선다. 산허리를 둘러가며 자작나무 숲을 향해 걷는다. 비탈을 돌자 자작나무 숲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하얀 나무 벽을 만난 듯 자작나무가 숲을 빼곡하게 매운다. 눈이 내리진 않았지만 온 천지는 눈으로 쌓인 듯 순백의 세계다.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자작나무.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자작나무는 허물을 벗듯 수피가 살짝 벗겨졌다. 하얀 수피(樹皮)를 벗기면 종이처럼 여러 겹으로 벗겨진다. 그래서일까. 자작나무의 영어 이름인 버취(Birch)의 어원이 ‘글을 쓰는 나무 껍데기’란 뜻이다. 예전엔 이 자작나무 껍질에 종이 대용으로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무껍질에는 기름기가 많아서 이것을 둘둘 말면 등(燈)이 돼 밤을 밝혔다. 그래서 촛불을 밝힌다는 뜻이 화촉(樺燭)이다. 한자는 다르지만 결혼할 때 ‘화촉’(華燭)도 이 자작나무에서 비롯했다.
자작나무 숲속교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한참을 자작나무에 빠져 바라보다보니 특이한 모습이 보인다. 나무들마다 하얀 수피에 눈썹 모양과 팔(八)자 모양의 흔적을 하고 있다. 가지의 흔적이 독특한 그림으로 표현된다. 산수화 모양도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들락날락한다. 그것마저 자작나무의 일부인양, 숲과 어울려 하나가 된다. 몰지각한 탐방객의 낙서가 마음의 평안을 깨뜨린다. 안타깝다. 숲은 괴롭히지 않고 같이 즐기는 모습을 보일 때 더 아름답다.
길을 원대리 회동마을길로 잡고 임도를 걷는다. 가을이면 야생화가 뒤덮는 길이다. 겨울엔 오히려 쓸쓸한 적막이 좋다. 새로 개설된 ‘인제천리길’의 표지가 보인다. 내가 걷는 길과 겹치는 길인 모양이다. 인제천리길은 왼쪽으로 접어들면서 갈라진다.
◆기억의 저편, 회동분교
회동분교 전경.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아랫길 회동분교로 향한다. 길 한 켠, 벌목된 나무가 말라서 아무렇게나 놓인 모습이 겨울의 모습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새라도 지저귈 법한데 이따금 바람소리만 소소할 뿐이다. 회동분교로 향하는 숲길은 천지간에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하다.
‘원대국민학교 회동분교’ 현판이 붙은 회동분교에 도착했다. 초등학교란 명칭을 쓰지 않은 걸 보니 세월이 느껴진다. 시커먼 판자로 가건물마냥 지어진 분교는 소래포구에서 보았던 소금창고와 모양이 닮았다. 1993년에 폐교되었다 하니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회동분교 교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이만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그때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분교를 나온 동네 분들의 수고가 아닐까 싶다. 이곳 회동에는 한참 때 50여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까까머리 학생들이 재잘대며 뛰어 놀았을 곳이다. 지금은 목조 건물만이 덩그러니 남아 쓸쓸하다. 교실에는 작은 의자와 책상을 비롯해 분필과 칠판, 풍금이 그때 그 시절을 추억케 한다.
회동분교를 뒤로 하고 숲길을 이어간다. 마을 사람들이 다녔을 숲길은 계곡 물길을 만나 여러번 가로지르기를 반복한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얼음꽃을 피운다. 숲길 끝은 원대리 마을회관이다.
◆모두 자작나무다
자작나무숲.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지난해 중국 이도백하(二道白河)를 다녀왔다.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서파로 가는 중에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봤다. 광활한 땅에 펼쳐진 자작나무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이끌었다. 차창 밖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원대리 여행은 그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자작나무는 100년을 사는 동안 북방의 추운 시간을 견디며 사람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나에게처럼 사람들에게 저마다 제각각 아름다운 기억을 나누어준다. 또한 아낌없이 베풀고 사라진다. 시인 백석은 자작나무의 고마움을 시 ‘백화’(白樺)로 그렸다.
백화(白樺)-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