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벤투스가 구단 레전드 출신 안드레아 피를로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사진=피를로 공식 트위터 계정 캡처
유벤투스가 감독실 명패에 안드레아 피를로의 이름을 붙였다. 구단 레전드 미드필더 출신이지만 감독 경력이 일천하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유벤투스 구단은 지난 주말 공식 채널을 통해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의 후임으로 피를로를 낙점했다고 밝혔다. 앞서 구단의 새 23세 이하(U-23) 감독으로 내정됐던 피를로는 불과 일주일 사이 1군 감독으로 '깜짝 승진'을 했다.

선수로는 화려한 영광, 감독은 '글쎄'

현역 시절 유벤투스에서 뛸 당시의 안드레아 피를로. /사진=로이터
피를로는 현역 시절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다.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정확도를 겸비한 킥은 피를로를 세계 최고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만들었다. 그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비롯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이탈리아 세리에A 등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며 선수로 누릴 수 있는 대부분의 영광을 모두 누렸다.

하지만 2017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아직까지 지도자 경력은 없다. 그 흔한 코치나 구단 고문 역도 맡은 적이 없다. 무수한 영광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피를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이유다.


유벤투스가 초짜 감독인 피를로를 선임한 이유는 구단에 새로운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매체 'BBC'는 10일(이하 한국시간) 보도를 통해 "안드레아 아그넬리 유벤투스 회장은 도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피를로 선임 배경을 전했다.

BBC는 "2016-2017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한 뒤 유벤투스는 다소 밋밋해졌다. 이듬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입단했지만 여전히 유벤투스는 지루해보이기만 했다"라며 "사리 감독이 부임한 뒤 유벤투스는 단순히 지루한 것을 넘어 투쟁심까지 사라졌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아그넬리 회장은 과거 안토니오 콘테와 막스 알레그리를 데려올 때처럼 일종의 도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라며 "유벤투스의 레전드였던 피를로라면 구단만의 정체성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잘나갔다. 2011년 이후 이번 시즌까지 세리에A 9연패를 달성하며 독주 체제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강세와는 반대로 유럽무대에서는 2017년 이후 힘을 쓰지 못했다. 유벤투스는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한 수 아래로 여겨진 올림피크 리옹에게 패해 16강에서 탈락했다. 신선한 충격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부임 후 딱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사리 감독을 해임하면서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구단의 영광을 이끌었던 상징성 있는 레전드 피를로를 다시 불러들였다.


유럽축구의 '레전드 감독' 유행… 피를로가 걸을 길은?

지난 2011년 5월 당시 FC 바르셀로나 감독이던 펩 과르디올라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로이터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축구계에서는 젊은 감독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특히 현역 시절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친정팀으로 다시 돌아온 감독들이 일련의 성과를 내며 하나의 유행을 만들었다.

가장 좋은 성공 사례는 역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다. FC 바르셀로나는 지난 2008년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의 후임으로 과르디올라를 선임하는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과르디올라는 현역 시절 구단 주장을 맡기까지 했던 레전드였지만 현역 은퇴 이후 지도자 경력이라고는 바르셀로나 B팀을 직전 1년 동안 맡은 게 전부였다.

우려가 따른 감독 선임이었지만 이후의 역사는 유럽축구계를 뒤집어 엎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르디올라는 이른바 '티키타카'라고 불리는 점유율 중심의 짧은 패스 전술을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리오넬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을 앞세운 과르디올라는 라리가 3연패를 비롯해 2008-2009시즌 전설적인 트레블을 달성하며 유럽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과르디올라 감독을 신호탄으로 유럽 축구계에서는 구단 레전드 선수들을 감독으로 데려오는 파격 인사가 이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가 지네딘 지단을 데려와 역사적인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위업을 이룩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올레 군나르 솔샤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랭크 램파드(첼시), 미켈 아르테타(아스날) 등이 연이어 친정팀으로 돌아와 소기의 성과를 남겼다.

티에리 앙리는 현역 시절 영광을 휩쓸었던 전설적인 공격수지만 감독 커리어의 시작은 실패로 귀결됐다. /사진=로이터
반면 실패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티에리 앙리다. 앙리는 현역 시절 아스널과 바르셀로나,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화려한 족적을 남긴 그야말로 스타 공격수다.

하지만 자신의 첫 구단이던 AS모나코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오히려 팀 성적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고난을 겪어야 했다. 결국 모나코는 강등권 인근까지 추락하는 성적 부진을 겪었고 앙리는 시즌 도중 경질됐다. 가까이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도 AC밀란이 클라렌스 셰도르프, 필리포 인자기, 젠나로 가투소 등 구단 레전드들을 연이어 감독으로 세웠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감독 생활을 눈앞에 둔 피를로에게는 두가지 길이 열려있다. 과르디올라처럼 성공적인 친정팀 복귀 커리어를 걸어갈 수도 있고 앙리처럼 팬들의 비판 속에 쓸쓸히 퇴장할 수도 있다. 피를로는 유벤투스와 2년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다음해, 혹은 2022년 여름 피를로는 두가지 길 중 어디에 서서 팬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