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잡았다.©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아버지는 대공계 형사였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운동권이 됐다. 시위와 구속을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속이 탔다. 어머니는 숨이 막혔다. 아버지는 직장(경찰)에서 눈총을 받았지만, 아들에게 한번도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 나름대로의 인생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29살의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떨어졌지만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그의 나이 49세. 대권을 꿈꾸고 있다.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이른바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의 주역인 박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대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외치며 주목을 받고 있다.

◇ 삼성 저격수 별명, 유치원3법 발의해 주목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있다가 와서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 색채가 강하다. 초선이었던 20대 국회에서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해 ‘삼성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고, 비리 유치원의 명단을 공개하고 ‘유치원 3법’을 대표발의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이승만,박정희에 대해 “이 대통령은 여러 과오가 많은 분이고, 박 대통령 역시 군사 독재, 반 인권은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면서도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재평가를 해서 민주당 강성 지지층으로 부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16일 여의도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만난 박용진 의원은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지금까지 출마했던 각종 선거의 포스터를 액자에 넣어 걸어 놓았다. 어린 20대부터 노련한 40대까지, 세월의 흐름이 얼굴에 묻어난다. 고교시절 그는 이미 시위를 주도했다고 했다.

“고교(신일고)시절 학내 시위를 주도했나?”
-고3 때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1989년 5월28일, 일요일에 결성됐다. 고2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이수호 선생님이 토요일 마지막 수업하고 가셨다. 전교조 결성 주도 인물로 이 선생님이 구속됐다. 친구들과 사전에 집회를 기획을 세웠다. 월요일 아침, 선생님들이 모두 교무회의 하러 간 자율학습 시간에 각 반에 사발통문을 돌렸다. 선생님이 자리 비우면 다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교내 방송반 문 따고 들어가서 스위치 켜고, 성명서를 방송했다. 선생님 지키기 위한다면 교문 앞에 모여라 했고, 10분만에 1200명이 모였다. 노태우 정부 시절 통제된 시절, 한달 넘게 시위를 주도했다. 나중에 선생님이 제자들이 자랑스럽다고 하셨다고 들었다.


“그것이 본인이 한 최초의 정치적 행위인가?
- 고1 때였던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벌어질 때 명동 일대 다니며 시위에 합류했다. 1988년도에는 박래전 열사가 숨진 사실을 <한겨레 신문>을 보고, 시위대에 합류하기도 했다.

“일찍부터 정치적 성향이 높았던 배경은?”
-평범한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대공과 형사였다. 보수적인 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깨어 있는 집안도 아니었다.


“대학 시절 처음 구속됐나?”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하며 서총련 북부총련 의장을 했는데,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등과 연대투쟁 파업을 지원해 구속됐다. 100여일 수감생활을 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한 동기는 무엇인가?”
-1992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민중후보 백기완 선생을 지원했다. 대선 준비 모임 만들고, 선거 유세를 따라 다녔다. 선거 결과 1.2%를 얻었다. 토지를 농민에게, 공장을 노동자에게 돌려주고, 반노동적 나라를 바꾸겠다고 약속하는데 1.2% 밖에 지지를 못받았다. 그때 깨달았다. 국가권력 위임하는데, 선거 때 반짝 나와선 표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평상시에 정치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기 위해선 정당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이 미쳤다.




“군 복무는 순조롭게 했나”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군 입대를 피할 수도 있었다. 주변에서 딱 한 분이 군대를 제발 다녀오라고 했다. 어머니였다. 너 때문에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다고 했다. 군대 가서 철 들고 오라고 하셨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감옥도 갔다오고 했으니 애간장이 타셨다. 아버지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직장에서 어마어마한 괴롭힘 당했을 것 같다. 군대 가서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많았다. 진중문고의 책도 거의 다 읽었다. 그러면서 정당을 만들고, 대선을 제대로 준비해보자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다.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나?”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 21에 들어가 권영길 후보를 따라 다녔다. 대변인실의 언론부장을 했다. 당시 27살이었다. 직접 권 후보를 찾아가 일을 달라고 부탁했다. 선거가 끝나고 캠프가 해산할 때 권 후보가 멋진 말을 했다. 진짜 진보정당을 만들어 보고 싶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지는 그 자리에 홈이 파이고 구멍이 난다, 그 역할을 하자고 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었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애썼다.

◇ 29살에 첫 출마 13.33% 득표, 민노당 서울 출마자 중 최고

“민주노동당 창당 직후인 2000년 4월, 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결과는?”
-29살의 젊은 나이였다. 서울 강북구 을 선거구였다. 7명 후보자 가운데 3위를 차지했고, 민주노동당 서울 출마자 가운데 최고 득표였다.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 나이에 4000만원 거금인 선거자금을 모으는 것도 기적이었다. 나를 대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같은 표현들을 여러 사람이 했다. 선거 기탁금을 돌려받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무려 7명의 후보가 나왔고, 조순형이라는 정치 거물도 있었다. 13.33%의 득표를 얻었다. 0.02% 많은 13.35%를 받았으면 기탁금 돌려받을 수 있었다. 유권자들이 박용진을 찍으면 당연히 사표(死票)인걸 알면서도 나를 찍었다. 그 이유는 내가 기죽지 않고, 힘 빠지지 않고, 정치를 포기하지 않고, 더 무럭무럭 자라서 돌아오라는 마음으로 찍어준 것이다. 삼양동 꼭대기 판자촌 할머니도, 미아동 이발소 아저씨도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때부터 대권 도전을 꿈꿨는가?”
-그때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생각만 있었다. 혁명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바꾸고 싶었다. 데모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과 다르게, 사람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구호만을 외치는 진보가 아닌, 설득력이 있고, 상대의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진보가 절실하다고 느꼈다.

“20대 국회에서 삼성 저격수, 유치원 3법 통과 등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결코 인기를 끌려고 한 일이 아니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센 사람들이다. 큰 정치 하지 않고, 기업이나 옥죈다는 말들을 들었다. 또 그러면 공천을 받을 수 있냐, 왜 그렇게 생각이 비주류냐 라는 말들도 들었다. 민주당의 이른바 주류 당원들한테 어떻게 하면 박수받고, 주목받고, 일 잘하네 라고 칭찬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긴 안다. 그러나 그보다는 민주당이 해야 할 일, 정치가 해야 할 일, 박용진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하려 한다.

◇ 이승만 박정희 공과 평가는 진영논리 벗어나자는 것

“최근 이승만, 박정희의 공과 과에 대한 나름 평가 발언과 <조선일보> 행사에 참석해 당내에서 많은 항의 받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기득권에 맞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분열에 맞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은 미래를 향해서 가는 정치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진영 논리에 맞춰서 상대를 비판하고 조롱만 하면,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나? 민주사회에서의 개혁은 선동이나 공격이 아니라, 설득과 합의로 해야 한다. 그리고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일은 내가 처음 한 것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세력과 손잡고 정권 재창출을 했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박정희의 기념관에 예산을 배정했다. 통합의 정치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을 탄핵하려 했던 세력들과 대연정을 제안했다. 권력을 당신들에게 양보할 테니 선거를 통해 정치를 바꿔 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제안은 모두 욕 먹는 제안이었다. DJP 연합이나 대연정 모두 지지층에게 욕을 먹었다. 그러나 이런 과감한 시도는 용기있는 시도였다. 그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민주당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통합에 대해 나부터 균형 잡힌 역할을 하고 싶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잡았다. © News1 박세연 기자

“일부에서 이야기 하는 40대 기수론에 대한 생각은?”
-정치라는 것은 자임하는 것이다. 정치는 늘 자기가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타천은 정치에서 큰 의미가 없다. 자기가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교체를 하지 못한 세대교체가 무슨 소용이 있나? 나이가 젊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세습된 재벌 세대가 아니라 혁신 창업가들의 시대가 열려야 된다. 거기서 정치가 역할을 해야 한다. 변화를 끌어내려면 기득권 질서의 패러다임에 젖어있지 않아야 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으로부터 특별히 도움받은 거 없으니, 회계 투명하게 합시다 라고 할 수 있고, 재벌 총수로부터 받은게 없으니 왜 불법 저지르세요, 법정 가셔야죠, 왜 세금 안 내세요, 상속세 내세요 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금 내고 군대 다 가는데 왜 재벌총수는 왜 안 하려 하나? 돈 있고 빽 있고 힘 있는 사람들도 법 잘 지키고 제도를 어기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부와 권력을 세습하려고 하면 과감히 맞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득권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해 봐라고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이 통과되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97세대는 앞선 386세대하고 사고방식과 행동방식 등에서 어떤 차이 있나?”
-변화, 통합, 전진의 혁신 창업가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은 늘 세상의 변화를 이끌려고 한다. 경제계의 대기업 임원진에 40대들이 등장한 지 꽤 됐다. 우리 사회의 주력부대, 우리 경제의 중추 세력들이 대부분 40대들이고 곳곳에서 분전하고 있다. 무엇을 향해 분전하는가 하면 기존 질서와 이익 연합을 깨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본인이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 정치가 제일 늦다. 생물학적 나이도 국회의원 평균 나이 55세이다. 재선의 박용진이 아직도 국회에서 어린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한 손실이라고 본다. 사회적 젊은 세대들과 눈을 맞추고, 시대적 경험을 같이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나이로서의 젊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 교체라는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한 싯점이다.

“실제로 민주당 내에 젊은 의원들의 목소리가 비중이 있나?”
-나이는 더 젊어졌죠. 민주당의 젊은 의원들 숫자는 늘긴 했는데, 아직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세력화하기엔 시간이 아직은 짧다.

◇ 차기 대선 출마 깊이 고민…미래 대비하는 정치 갈망
“차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인가?”
-깊이 고민하고 있다. 정치는 자임하는 것이다. 또 자임하는 것뿐 아니라 거기에 맞게 ‘호명’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자신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과 ‘준비됐어’는 다르다. 좀 더 많이 이야기를 듣고, 더 넓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본인이 대선에 출마하는 데 어떤 강점이 있나?”
-사법은 과거 문제 판결하고, 행정은 오늘의 일을 집행하고, 정치는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 본질이 정치 권력에 있다. 일단 젊고 개혁적이다, 주류 질서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장점이다. 비주류라는 이야기도 되는데, 기존의 세습 재벌이나, 기존 낡은 경제 시스템에 한번도 편입된 적 없어서 자유롭게 혁신 경제와 창업가들의 시대로 가는데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어떻게 해석하나?”
-지금의 대선 지지도는 인지도와 단순 호감도의 결합이다. 지금의 여론조사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대해 현 정부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탈원전 수사를 시작하는 걸 보고 이게 뭔가 싶었다. 예를 들어 검찰은 30㎝ 자를 들고, 422㎞의 긴 경부고속도로를 재는 것과 같다. 30㎝ 자로 경부고속도로가 설계도와 조금 다르게 삐뚤어졌다고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국민이 선택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30㎝ 자를 들고 재단하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본다. 정치적 의도는 아닌지 걱정도 든다. 검찰은 수사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행위 해선 안된다.

“본인을 ‘정치계 손흥민’이라고 했다.”
-축구는 운동장을 넓게 써야 승리한다. 진보가 무슨 이승만, 박정희의 공과를 이야기 하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있다. 우리 팀이 진보팀이라고 하고, 골을 넣으려면 운동장 넓게 써야 한다. 안 그려면 골을 못 넣는다. 손흥민 선수는 왼쪽도, 오른쪽도 돌파한다.

“본인이 추구하는 정치적 어젠다(의제)는 무엇인가 ?”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정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개혁정치… 이런 표현은 중요하지 않다. 조선시대 조광조가 내걸었던 정치 핵심이 바로 도학 정치, 즉 아름답고 숭고한 성리학의 세상을 실현시키겠다고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나중에 실학으로 이어져 실증적 사상, 민생정치, 대동법을 만들었다. 이 시대의 대동법은 바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혁신경제다. 누군가의 조롱과 비난 받아가며 대동법 실현한 것처럼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박용진의 정치적 기치는 먹고사는 진보, 민생 제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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