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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은 흔히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혹은 중간파 정치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여운형은 언론, 체육, 외교,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활동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그 중에서 언론인 몽양 여운형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그가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의 필진과 논조가 어떠했는지 동아일보, 조선일보와의 차별성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몽양 여운형은 1929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 수감된 후 1932년 가출옥되어 1933년 2월 16일에 조선중앙일보에 취임했다. 취임 후 중앙일보였던 제호를 조선중앙일보로 변경하고 ‘여론의 대표기관, 정의의 옹호기관, 엄정한 비판기관’이라는 3대 신조를 표방했다.
조선중앙일보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다른 신문사들에 비해 열악한 재정으로 인한 운영난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와 논평을 개재하고 식민지 현실 및 세계적인 현실 정세 등을 신문에 다뤄 다른 신문사들과 차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 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삭제한 사진을 게재한 사건으로 인해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며 여운형도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4명의 교수가 몽양 여운형에 대한 다양한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으며, 이후 종합토론은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좌장으로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정용서 연세대학교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실장 등이 참가해 발표자들과 함께 토론에 나섰다.
이번 심포지엄은 사회적 거리두기 매뉴얼에 따라 진행됐으며, 온라인(유튜브 공식채널 : 몽양여운형기념관)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함께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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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김동우 기자
'동행미디어 시대' 경기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김동우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