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53)가 지난 17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이 윤성여씨를 붙잡아갔다. 윤씨는 당시 22세였다.

사건은 화성시에서 살인사건이 계속되던 지난 1988년 9월16일 일어났다. 그날 새벽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박모양(당시 13세)이 성폭행당한 뒤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989년 7월 경찰은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범행 수법이 이전 화성 사건들과 다른 점, 방에서 발견된 체모가 윤씨의 것과 일치한 점 등을 근거로 윤씨를 특정했다.

윤씨는 당시 경기 화성 소재 작은 농기구 센터에서 근무하던 시민이었다. 경찰은 윤씨의 직장을 오가며 그의 낮은 학력 등을 빌미로 그를 의심했다.


윤씨 기억에 의하면 경찰은 그해 5~6월 윤씨의 체모를 5~7회 가져갔다. "체모(음모)를 뽑아달라"는 강압적 요구에 윤씨는 수차례 응할 수 밖에 없었다.

경찰은 당시 DNA 분석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윤씨 체모로부터 금속이 발견된 점을 근거로 들어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서도 금속 성분이 나왔다는 이유에서다.


윤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지만 계속된 구타를 이길 수 없었다. 경찰은 윤씨를 가두고 폭력과 고문을 동원했다.

경찰은 또 윤씨가 박양 자택의 담을 넘었다고 주장했지만 윤씨는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쉽게 담을 넘지 못한다고 항변했다. 경찰은 윤씨의 말을 듣지 않았다. 훗날 재심에서 윤씨는 당시 검증 현장에서 형사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담 넘는 시늉을 했었다고 진술했다.


사흘 동안 잠을 재우지 않는 등 지속적인 강압수사에 윤씨는 결국 허위로 범행을 자백했다.

그는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조서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도 모른 채 지장을 찍었다. 재판이 시작된 후에는 범행을 시인해야 사형을 피할 수 있다고 들었으며 1심에서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억한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53)가 지난 17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선고공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소감을 말하는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심 이후 억울함을 주장했지만 선임된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검찰은 재수사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사건 당시 함께 잠을 잤던 증인의 증언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씨는 결국 20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흉악범이라는 낙인에 교도소 내 괴롭힘을 당했다. 재심 신청을 몇 차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옥살이 중 윤씨를 믿어준 건 단 한 사람, 당시 교정 공무원이었던 박종덕 계장이었다. 윤씨는 한 인터뷰에서 교도소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 박 계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 계장은 윤씨가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격증 취득도 도왔다.

지난 2009년 모범수로 출소한 그는 사람들로부터 흉악한 범죄자라는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다. 이때도 윤씨를 도운 건 박 계장이었다.

윤씨는 교도소가 있는 청주에 삶의 터를 잡고 자동차 시트 제작 공장에서 원단을 옮기는 일을 하며 낙인 속에도 성실히 살았다.

이런 윤씨의 억울함이 풀리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 경기 남부지역 연쇄살인 사건 범인 이춘재(58)의 뜬금없는 자백 덕분이었다. 윤씨의 범행이라고 지목됐던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힌 것이다.

윤씨는 지난해 11월13일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그를 도왔다. 총 11차례 진행된 공판 끝에 지난 17일 윤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 선고 직후 법정을 나온 윤씨는 "나같은 (억울한)사람이 나오질 않길 바라며 앞으로 (사법부의) 공정한 재판이 나오기도 역시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