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오찬 회동이 만남 1시간 전 무산됐다.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에서 재판소원법과 대법관 증원법을 단독 통과시킨 데 대한 야당의 반발이 직접적 계기였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악수를 청하는 데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향해 이 대통령의 'X맨'이냐고 했고, 정 대표는 "본인이 (회동을) 요청할 때는 언제고, 예의가 눈꼽만큼도 없는 작태"라고 비난했다. 협치와 소통을 바랐던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거칠어진 비난전으로 돌아왔다. 청와대는 국회 일과 대통령 일정을 연계한 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앞에는 국가적 의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대외 이슈만 봐도 미국의 관세인상 압박, 희토류 광물전쟁, '강한 일본'을 외치는 다카이치 정권의 독주, 중국의 반도체 기술 추격 등 현안이 수두룩하다. 국내적으론 광역지자체 행정통합, 주택공급대책 후속 입법, 필수의료 강화, AI 정책과 청년 일자리 대책 등이 있다. 국익과 민생에 영향을 주는 사안일수록 여야가 함께 논의하고 법안을 추진해야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특검과 검찰·사법 이슈는 입장차가 크지만, 접점을 찾을수록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번 회동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졌던 이유다.

그런 만큼 이번 회동 무산은 우리 정치의 후진적 작동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된다. 그간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은 힘의 논리를, 소수 야당은 반발을 택하는 구조가 반복돼 왔고 그 결과가 불과 1시간 전 회동 취소라는 상징적 장면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비쟁점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던 오후 본회의에 불참했다. 대미투자특별법 특위 첫 회의도 시작부터 파행됐다. 미국은 대미투자법 처리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고리로 관세를 다시 높이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국익 차원에서 여야가 부랴부랴 특위를 구성하고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는데, 국내 정치가 다시 발목을 잡은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권의 주체들이 국가적 의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거나 충분한 논의와 조율을 거치는 과정은 온데간데 없고 매사 정략, 당리당략이 앞서고 있는 게 우리 정치의 한심한 현주소다. 여야 모두 강경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타협의 공간을 좁혀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야 갈등 상황을 보면 취소된 약속을 다시 잡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들이 만난다고 단번에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지난해 첫 회동에서 '민생경제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에선 '다시, 계속' 만나는 게 중요하다. 통계청 사회조사 등 각종 조사에서 국민들은 정치·이념 갈등을 가장 큰 사회갈등으로 꼽고 있다. 국민은 국가적 난제 앞에서 대통령과 정치권이 함께 논의하는 모습을 바라지만 한국 정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책무다. 국익이 정파나 진영의 인질이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