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회담하며 발언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적으로 봉쇄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최대 16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화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국제유가 급등으로 무역수지까지 악화되면 '원화 약세'가 더욱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대해 "미 해군이 가능한 한 빨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송을 시작할 것"이라며 "미국 국제금융개발공사(DFC)에 걸프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해운, 특히 에너지 운송에 대해 정치적 위험 보험·보증을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의 물동량은 지난 1월 기준 일평균 약 2000만 배럴에 달한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7%에 해당하는 양이다. 한국은 원유의 70%, LNG(액화천연가스)의 20%를 중동에 의존하는데, 이 가운데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에도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송의 차질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란혁명수비대는 지난 2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2019년 기준 이란이 수중 폭발물인 기뢰를 최소 50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 이란이 대규모 드론을 활용해 유조선 등을 공격할 경우에도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3월3일(현지시간) 이란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이스라엘 아슈켈론에서 요격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경제엔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우선 환율 급등이 우려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해협 봉쇄 사태가 3~4개월 지속될 경우 환율이 1500원 중반대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최근 환율이 급등했는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봤을 때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수입 원유 가운데 70%가 UAE(아랍에미리트)산 등 두바이유라는 점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수입 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무역수지도 악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한국 시장을 떠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오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기업들이 달러화를 계속 쥐고 있으려고 하면서 '강달러' 현상을 부를 것"이라며 "이 경우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달러화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 길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면서 "1600원까지 치솟는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치와 전략적 중요성. / 사진=삼일회계법인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석 교수는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일반적으로 3주 뒤에 국내 석유 가격이 상승하게 돼 있다"며 "국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고,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도시가스,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도 상승 압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강달러 현상이 나타나면서 수입 원자재를 수입했을 때 원화 표시가격이 오르고 식료품, 수입농산물 가격 등까지 다 상승해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도 높아질 수 있다"며 "실제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침체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제3차 오일쇼크로 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제1차 오일쇼크 당시 유가는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 상승했고 물가는 20% 이상 치솟았다. 당시 한국은 에너지 가운데 석유의 비중이 약 58%에 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석유 수출이 전면 중단되면서 발생한 제2차 오일쇼크 당시엔 유가가 3배 뛰었다. 1980년 한국은 현대 경제 통계가 작성된 이래 사상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에너지원이 다각화돼 석유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고, 고효율 산업 구조를 통해 외부 충격에 대한 경제적 완충력을 확보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