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대형 시공사의 임원들은 한목소리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사태를 우려했다. 전쟁 국가의 국민들이 치러야 하는 고통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국제사회를 공급망으로 연결한 21세기의 군사 분쟁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복합 위기'로 다가왔다.


위기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고리는 경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정부기관보다 기업, 기업보다 개인 투자자가 리스크 관리에 취약하다.

최근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분쟁과 신축 아파트 하자 사태의 배경에는 자재 대란으로 인한 공사비 리스크가 있다. 글로벌 물류망의 이상으로 돈이 있어도 물건을 못 구하는 수급 불균형, 물건을 구해도 운송비가 공사비를 갉아먹는 상황은 기업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1990년대 자재 파동의 악몽을 상기시킨다.


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민간 공사현장에서 벌어진다. 대형 발주사가 시공사에 공사 적자를 전가하면 시공사는 더 힘이 약한 하도급업체와 정비사업 조합, 중소 시행사로 그리고 다시 분양계약자 등으로 떠밀리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최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사업의 공사비 인상 결정에서 보듯 공공공사는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에스컬레이션)이 인정된다. 반면 대기업 발주사가 시공사와 체결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소송 사태는 계약 불확실성과 계약자간 불신을 키운 단적인 사례다.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다.


시공사는 계약 상대에 따라 협상의 우위를 갖기도 하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향후 후속 수주를 고려하면 발주사를 상대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관계 절교' 선언과도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표준계약서 활용을 권고해 중재에 나섰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는 거대 발주사의 독소 조항 앞에 무력하다는 게 건설업계 주장이다. 이에 민간 계약의 불공정 특약을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협상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고성장기에 한국 산업의 뿌리 역할을 한 K건설은 전환점에 섰다. 국내 주택사업을 기반으로 매출을 키워온 대형 시공사들이 원전과 인프라, 플랜트 수출로서 주택건설 사업자들과 다른 노선의 경쟁을 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건설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해외 기업들을 상대로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 플레이어들이 글로벌 현장으로 나아가고 외교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으려면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의 25%를 차지한 중동 시장은 기회의 땅이 아닌 화약고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50억달러 아미랄(Amiral) 석유화학 프로젝트, 카타르 37억달러 담수복합발전 플랜트 건설 등 수조원대 사업을 수행 중인 국내 기업들은 공정 지연과 인력 철수를 결단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20% 오를 때 건설 원가는 7% 이상 상승한다. 석유화학 계열 페인트, 단열재, 방수재 가격은 한 달 만에 20% 이상 폭등했다. 2022년 러시아 전쟁으로 발생한 원자재 가격 폭등 사태가 채 안정되기 전에 다시 '원가율 100%'의 절벽 앞에 섰다.

원·달러 환율과 국제유가 변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경제활동 주체는 없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고 속에 상생 없는 독자 생존만을 강요하는 것이 시스템의 부재는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노향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