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기업이 제품 공급에 대한 '불가항력'을 연이어 선언하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개방 논의, 우회로 모색 등의 방안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은 호르무즈 해협 전경. /사진=유세진


미국·이란 전쟁 충격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제품 공급에 대한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잇따라 선언하고 있다. 전쟁 여파로 원유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재료 수급난이 심화한 탓이다. 업계 위기감이 고조되는 만큼 해협 개방을 위한 국제 사회 공조와 우회 수송로 가동 등의 방안이 숨통을 트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석화기업은 고객사를 대상으로 일부 제품과 관련한 공급 불가항력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불가항력은 전쟁과 천재지변 등 단일 기업이 제어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고객사에 제품을 제때 공급하기 어려울 때 내리는 조치다. 불가항력 선언 시 추후 계약불이행에 따른 배상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

전날 한화토탈에너지스는 파라자일렌(PX) 제품을 공급하는 고객사에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최근 이란 전쟁으로 중동산 원유 및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긴 데 따른 조치로 다음 달 일시적으로 관련 설비 가동률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전면 공급 중단이 아닌 데다 내수 비중이 높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물량은 정상 제공 중이라고 해명했지만 석화업계를 둘러싼 공급망 불안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는 우려다.


지난달 초에는 여천NCC가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불가항력을 알린 바 있다. 여천NCC 역시 에틸렌 등의 핵심원료인 나프타 조달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고객사에 공급 이행 지연 및 조정 가능성을 통보했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 등 나프타→기초유분→석유화학 제품으로 이어지는 생산 체계를 갖춘 기업들도 고객사에 생산 차질 또는 공급 조정을 알렸다.

미국·이란 전쟁이 길어진 게 업계 직격탄으로 이어졌다. 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중동산 원유와 나프타 젖줄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고, 주요 석화기업들이 원재료 수급난을 겪으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석화업계는 국내 정유사가 생산하는 나프타와 수입 나프타를 절반씩 취급하며 수입 물량의 절반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고 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이를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속속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날 한국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처음으로 우회로인 홍해를 통해 빠져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양수산부는 그간 산업부 등 관계기관·업계와 협력해 우회로 활용 방안을 모색해왔고, 항해 안전 정보 제공·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 등의 노력이 성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한 국제 사회의 협력도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현지시각으로 이날 오후 '호르무즈 해협 항행 자유 이니셔티브' 화상회의를 공동 주재한다. 한국 등 40개국 정상들이 국제해사기구(IMO) 등과 함께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다. 이재명 대통령도 화상회의로 참석할 예정이다.


회의에서는 ▲항행의 자유와 해상 안보 유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유지에 따른 경제적 대응 방안 검토 ▲억류된 선원 석방 및 고립된 선박 인도 보장 ▲안전한 운송 재개를 위한 해운업계와의 협력 등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나프타 확보 노력이 다양해지고 있는 건 매우 긍정적"이라며 "특히 중동산 나프타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 논의 등의 움직임이 석화업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