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지난달 기준 13% 이상 하락했다가 미·이란 종전 기대감 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1일 서울 시내 금은방 거리에 골드바 광고가 결려 있다. /사진=뉴스1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때마다 시장 참여자들은 가장 먼저 '금(金)'을 떠올린다. 역사적으로 금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안전 자산이자 위기 국면의 강력한 방어막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까지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 고관세 및 무역 분쟁 심화, 그리고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의 상시화는 달러 신뢰도를 뒤흔들며 국제 금 가격을 역사적 고점까지 밀어 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은 기존의 공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란과 미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높아지고 중동의 리스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 가격은 시장의 예상과 달리 지속적인 조정을 받는 모습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의아해하는 대목이다. "전쟁이 터졌는데, 왜 안전 자산인 금이 떨어지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자산 시장은 단순한 지정학적 공포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라는 훨씬 거대하고 파괴력 있는 거시경제 변수가 안전 자산 흐름과 맞물려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 가격을 움직이는 축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지정학적 위기 외에도 달러화의 가치, 실질 금리, 글로벌 중앙은행의 매수세, 원자재 가격 등의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움직인다. 최근 중동 분쟁이 가져온 가장 즉각적인 나비효과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협을 자극해 국제 유가의 상승 압력을 키운 것이다. 유가의 상승은 고스란히 글로벌 물가 전반을 압박하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금 촉발한다. '유가 상승 → 인플레이션 우려 재점화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지연 및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금은 기본적으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자산이다. 따라서 미국 기준금리가 내릴 때 상대적 매력도가 극대화되는 반면, 미국 금리가 오르거나 예상보다 고금리 환경이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득세하면 금을 보유하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이 급격히 커진다. 여기에 통화 긴축 기조의 연장은 현금 확보 심리를 자극하고 달러화 강세를 유도해 금 가격에 하방 압력을 가한다. 즉 현재 시장은 '전쟁이 났으니 안전 자산인 금을 사자'는 1차원적 심리보다 '전쟁 → 유가 상승 → 물가 상승 → 금리 인하 지연 → 달러 강세'로 이어지는 견고한 매크로 구조가 훨씬 더 압도적인 힘으로 가격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 역사적 전쟁 사례를 복기해보면 1991년 걸프전(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및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전면전 초기에는 심리적 충격으로 금값이 급등했다. 이후 전개된 미국의 재정 정책 기조와 연준의 금리 흐름, S&P500 등 위험 자산의 향방에 따라 금 가격은 빠르게 반락하거나 약세로 돌아서는 흐름을 반복한 바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흔들림을 금 투자의 수명이 다한 신호로 해석해야 할까? 필자의 판단은 정반대다. 단기적으로는 미 연준의 통화 정책 스탠스와 물가 지표에 따라 금 가격의 단기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 궤적을 바라본다면, 금의 가치를 지탱하는 구조적 수요 체력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달러 패권의 균열과 '탈달러화' 가속
글로벌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71%에 달했으나, 2025년 기준 56% 선까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인 고관세 및 무역 분절화 정책은 금융시장에서 '탈달러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로화가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면에서 중국, 폴란드, 튀르키예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이는 대신 금 매입 규모를 공격적으로 늘리며 자산 다변화와 통화 헤지(위험 분산)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 국가 부채 폭증과 화폐 가치 하락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무기로 내세워 2027년 국방비 예산을 1조 5천억 달러 규모로 대폭 증액하기로 선언하는 등, 미국의 공격적인 재정 지출 확대와 국채 발행 속도는 종이 화폐(Fiat Currency)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저하를 낳고 있다. 최근 월가와 글로벌 자산가들 사이에서 대세로 떠오른 '화폐가치 하락 방어 트레이드(Debasement Trade)'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통화 공급 과잉에 대응해 자산의 실질 구매력을 지키려는 필연적인 선택이고 그 중심에는 늘 금이 위치한다.

대체 통화 자산으로서의 지위 격상
과거의 금이 단순히 지정학적 위기 때 잠시 피하는 전통적 '안전 실물 자산'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국가 부채 리스크와 부딪히는 달러를 직접 대체하는 '통화형 자산'으로서 금의 패러다임이 진화하는 모습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대안 투자 관심도가 폭발하며 글로벌 중앙은행의 완강한 수요와 상장지수펀드(ETF)로의 자금 유입이 동시에 이를 증명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금 투자는 단순히 단기 매매 차익을 노리는 '트레이딩'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승산이 없다. 철저하게 '통화 분산'과 '구조적 안정성'이라는 자산 배분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특히 원화 중심 자산(국내 부동산 및 주식)에 포트폴리오가 극단적으로 편중된 국내 자산가들에게, 금은 달러와 더불어 자산 전체의 변동성을 낮추고 가문의 부(富)를 지키는 든든한 '실물 통화 보루'가 돼 주기 때문이다.

물론 금 역시 매크로 변수에 따른 가격 출렁임이 존재한다. 이럴 때일수록 뉴스 헤드라인에 일희일비하며 목돈을 한 번에 밀어 넣기보다, 가격 조정을 기회 삼아 꾸준히 비중을 늘려가는 분할 매수 전략이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아울러 매매차익 비과세 혜택이 유리한 KRX 금현물 시장이나 김치 프리미엄을 상쇄하는 은행의 골드리슈 계좌 등을 스마트하게 활용하는 혜안도 동반돼야 한다.

"전쟁이 나면 덮어놓고 금이 오른다"는 단선적인 공식은 깨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종이 통화와 국가 부채에 대한 불안이 깊어질수록 실물 금의 본질적 가치는 더욱 찬란해진다"는 대원칙은 변함이 없다. 지금 우리는 달러 패권과 금리, 인플레이션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자산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변곡점에 서 있다. 이 흔들리는 분절화의 시대, 시장의 폭풍 속에서 금은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중심추가 될 것이다.

강동희 신한은행 신한 프리미어 PWM 강남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