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연체내역 아닌 현재 가능성 중심…'숫자 밖 서민' 챙긴다
[포용금융 2.0④]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 탄력
서금원·은행권, 씬파일러 주목
강한빛 기자
공유하기
편집자주
금융이 단순 대출 지원을 넘어 채무조정, 추심 관행 개선, 취약차주 재기 지원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동행미디어 시대는 제도 설계와 상담 현장을 함께 짚으며 금융이 나아가야 할 다음 과제를 들여다봤다.
기존 신용평가 체계가 포착하지 못했던 '숫자 밖 서민'을 금융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안신용평가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낮은 신용점수나 과거 연체 이력만으로 배제됐던 차주의 현재 소득 흐름, 생활 속 납부 이력, 상환 의지를 새롭게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29일 금융위원회는 전날(28일)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을 출범하고 금융시스템 전반을 포용적 구조로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추진단은 감독총괄, 정책서민, 금융산업, 신용인프라 등 4개 분과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가운데 신용인프라분과는 신용평가 체계와 포용금융의 연계를 맡는다. 과거 연체 이력에 치우친 평가에서 벗어나 현재의 상환능력과 회복 가능성을 보다 정교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연체정보 활용 기준과 비금융정보 활용 체계를 손보는 것이 핵심이다. 올 1월 '신용평가체계 개편 TF'(태스크포스)를 통해 신용평가체계 개편 작업에 들어선 이후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으로 논의가 한층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대안신용평가는 기존 금융정보만으로 평가가 어려운 차주의 실제 상환능력을 보기 위한 장치다. 통신비 납부 이력, 세금·공과금 납부 내역, 소비 패턴 등 비금융 생활·사업 데이터를 활용해 차주의 신용도를 살피는 방식이다. 금융이력 부족자나 중·저신용자가 기존 신용점수만으로 대출 심사에서 배제되는 것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구본혁 나이스평가정보 대안정보사업실장은 "전통적 신용평가가 얼마나 돈을 잘 빌리고 갚았는가에 초점을 맞춘 반면 대안신용평가는 일상생활을 얼마나 성실하게 영위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현재 대안신용평가는 데이터 분석, 동의 절차, 시스템 운영, 정보 활용 등 4대 장벽으로 병목현상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도 명확하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3일 SNS를 통해 "낡은 신용평가 틀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며 "과거의 연체 기록이나 카드 이력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사람들은 매일의 소비와 플랫폼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삶의 신호를 만들고 있다"며 생활 데이터와 현재의 상환 가능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심사 체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통신비·공과금도 신용으로…은행권 심사모형 고도화
대안신용평가 활용에 가장 먼저 속도를 낸 곳은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인터넷은행들은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주요 과제로 안고 있는 만큼 기존 금융정보만으로는 차주의 상환능력을 충분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자체 신용평가모형을 고도화해왔다.카카오뱅크는 외부 기관과 결합한 가명정보 등을 활용해 자체 신용평가모형인 '카카오뱅크스코어'를 개발했다. 기존 평가모형만으로는 대출이 어려웠던 중·저신용 고객 가운데 상환 가능성이 있는 차주를 추가로 발굴하기 위한 목적이다.
토스뱅크도 자체 신용평가모형인 TSS를 통해 중·저신용자를 재평가하고 있다. 케이뱅크는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 3사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 SGI서울보증이 공동 출자해 개발한 통신 기반 신용평가 시스템 '이퀄(Equal)' 모델을 대출 심사에 활용한다. 통신 기반 정보를 반영해 금융정보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신용도를 보완 평가하는 구조다.
이 같은 자체 신용평가모형 고도화는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에도 반영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인터넷은행 3사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중은 잔액 기준 토스뱅크 34.75%, 카카오뱅크 32.3%, 케이뱅크 31.9%로 모두 30%를 웃돌았다. 자체 신용평가모형 고도화가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의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시중은행도 대안신용평가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나은행은 2019년 머신러닝 방식의 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한 이후 현재 '소매ML모형 3.0 고도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농협·하나·신한·우리·국민·제주은행 등은 올 하반기부터 소상공인의 미래 성장성을 반영한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모형'(SCB) 시범운영에 돌입한다. 매출, 업종, 상권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업종별 소상공인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대출 문턱 낮춰도 RWA는 그대로…규제 정합성 숙제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심사에서 걸러졌던 중·저신용자의 상환 가능성을 재평가하고 이를 대환대출이나 금융사다리 상품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포용금융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우리은행은 우리금융그룹 계열사 고금리 신용대출 이용 고객의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환 전용 상품인 '우리 WON Dream 갈아타기 대출'을 내놨다. 기존 금융정보만으로 신용평가가 어려웠던 고객을 위해 대안신용평가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금융거래 내역뿐 아니라 통신·소액결제 등 비금융 데이터를 반영해 대출 심사 가능 구간을 넓혔다.
NH농협금융지주도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중·저신용자 전용 '1금융 갈아타기 대출'을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차주의 통신비, 세금·공과금 납부 이력, 도서 구입, 전통시장·대중교통 이용 내역 등 생활 밀착형 비금융 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8월부터 대출심사 시스템 전면 재설계에 착수했으며, 올해 하반기 중 대안정보 기반 머신러닝 심사전략을 확정할 계획이다. 금융정보 기반 심사에서 거절 판정을 받았던 고객도 비금융 정보를 반영하면 승인으로 전환될 수 있어 중·저신용자의 대출 대상과 한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대안신용평가가 포용금융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은행 건전성 규제와의 연결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 은행이 차주의 상환 가능성과 대출 취급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전략모형'을 쓰지만, 자본 건전성을 따질 땐 금융감독원의 '규제모형'을 거쳐야 한다.
은행이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상환 가능성이 있는 차주를 새롭게 찾아내더라도 위험가중자산(RWA)을 계산할 때는 감독당국이 승인한 기존 규제모형이 적용되는 구조다. 때문에 대안신용평가가 실제 대출 심사에서는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더라도 자본규제상 위험가중치 산정에는 그 효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포용금융 강화와 건전성 규제 사이에서 은행권의 역할은 더욱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상환 가능성이 있는 차주를 새롭게 발굴하더라도 위험가중자산 산출에는 기존 규제모형이 적용된다"며 "현장에 안착하려면 건전성 규제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과제"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
-
강한빛 기자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