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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품이 아닌 동료들의 온기 속에서 한 장애인 활동가가 마지막 길을 떠나게 됐다.
무연고 중증장애인의 죽음 앞에서 광주 지역 장애인단체와 활동가들이 다시 한번 스스로 가족이자 상주를 자처하며 따뜻한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탈시설 자립생활 활동가로 살아온 중증 뇌병변 장애인 고 박영길 씨가 지난 4일 향년 56세로 별세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와 함께 연고자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광주 지역 장애계는 곧바로 뜻을 모았다.
지역 장애인단체 관계자와 동료 활동가 70여 명은 '고 박영길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고인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도록 직접 장례를 준비하기로 했다.
고인은 1971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장애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어머니를 여읜 뒤 1989년 재활시설에 입소해 무려 25년 동안 시설생활을 해야 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14년 시설을 나와 체험홈 생활을 시작하며 지역사회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완전한 자립생활을 이루며 장애인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섰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에서 활동한 그는 탈시설과 자립생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현장을 누볐으며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동료이자 선배였다. 활동지원서비스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그의 삶은 많은 장애인들에게 귀감이 됐다.
하지만 고인의 마지막 순간은 안타깝게도 무연고 사망이라는 현실과 마주했다. 자칫 빈소조차 마련되지 못한 채 공영장례 절차로만 마무리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장애계는 즉시 행동에 나섰고 장례식장 측의 협조를 받아 빈소를 마련했다. 동료들은 고인을 추모하며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4년에도 무연고 상태로 별세한 장애인 자립생활 활동가 고 정현영 씨의 장례를 광주 장애계가 함께 치른 바 있다. 당시에도 수많은 시민과 동료들이 참여해 존엄한 배웅을 했으며 이번 역시 공동체의 연대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고 있다.
장례위원회는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할 권리가 있다"며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민간의 선의와 헌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영길 동지가 평생 장애인 권리와 자립을 위해 헌신했던 만큼 마지막 길만큼은 외롭지 않게 배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광주 장애계의 따뜻한 연대는 한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의 존엄한 삶과 죽음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가족은 없었지만 그를 기억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고인의 마지막 길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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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정태관 기자
머니S 호남지사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