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 반도체 등 핵심기술 해외유출로 발생한 국가경제 피해가 2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지만 관련 판결 496건 중 피해액이 인정된 사례는 전무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핵심기술 해외유출로 인한 국가경제 피해 추산액이 6년 간 23조원에 달하지만 정작 법원이 유출 피해액을 산정해 인정한 판결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핵심기술 해외유출 대응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총에 따르면 최근 핵심기술 해외유출 적발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5년 33건으로 급증했으며 2020년 이후 해외유출로 인한 국가경제 피해 추산액은 약 23조원에 이른다.


유출 피해를 실제 처벌로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뚜렷했다. 경총은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상 몰수·추징 대상이 '범죄행위로 얻은 이익'으로 규정돼 있지만, 유출된 기술의 가치 산정 자체가 까다로워 몰수·추징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기술유출 관련 1심 유죄 판결 496건 가운데 유출 피해액을 산정해 인정한 판결은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결과 국민 다수도 기술유출의 심각성을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2.5%는 핵심기술 해외유출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 중 '매우 심각'(9~10점)이라는 응답이 62.6%로 절반을 웃돌았다. 핵심기술 해외유출 사건을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도 86.5%에 달했다.


법체계 정비에 대한 요구도 높았다. 응답자의 91.4%는 미국·중국처럼 경제안보 차원의 법체계를 신설해 대응해야 한다고 답했다. 경총은 미국의 경제스파이법, 중국의 반간첩법은 기술유출 자체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해 억제·처벌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국내 산업기술보호법·첨단전략산업법 등은 기술의 보호·육성이 목적이고 처벌은 부수적 수단에 머물러 있다고 짚었다.

처벌 수위에 대해서도 90.7%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징역형과 별도로 벌금·재산몰수 등 징벌적 경제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안에는 90.6%가 찬성해 범죄로 얻는 이익보다 큰 경제적 불이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인됐다.


핵심기술 해외유출로 가장 우려되는 피해로는 '추격국가와의 기술격차 축소에 따른 국가경쟁력 약화'가 53.0%로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국가 안보·공급망 안정성 위협' 19.5%,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 16.4% 순이었다.

경총이 함께 공개한 사례집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공정기술이 2016년 중국 창신메모리(CXMT)로 유출된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6년4개월이 확정돼 국내 기술 해외유출 사건 중 역대 최고 형량으로 기록됐다. 이 밖에 현대자동차 수소연료전지 기술, 한화오션 잠수함 설계도면, 삼성디스플레이 OLED 기술, SK하이닉스 반도체 연구자료 유출 사건 등도 함께 소개됐다.

하상우 경총 이사는 "국민 다수가 핵심기술 해외유출을 단순 기업 차원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으로 보고 있는 만큼, 신속한 제도 보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첨단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인 우리나라는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부정적 파급효과가 다른 나라보다 클 수밖에 없다"며 "핵심기술 해외유출에 대한 강력한 처벌법제 도입과 같은 경제안보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