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식 국회의장이 지난 7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대상이 아니라는 조정식 국회의장의 해명에도 '계산된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친명·6선에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낸 메신저의 무게, 12시간 만에 해명, 조원철 법제처장 답변과 같은 메시지의 반복성이 이런 해석의 배경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연임 불가를 직접 밝혔다는 점을 들어 조 의장의 실언이라는 입장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29일 청와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헌법 체계가 연임을 허용하지 않고 국민들께서도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조 의장은 전날 밤 개헌 발언이 논란이 된지 12시간 만에 페이스북에 "헌법 128조 2항의 내용은 존중돼야 하며 향후 이뤄질 개헌 논의에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그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헌법 제128조 2항이 만들어진 배경. / 그레픽=신재민 편집위원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이 개헌으로 스스로 임기를 늘리거나 연임의 길을 여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조항이다.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 제129조 2항으로 처음 신설됐고 1987년 현행 헌법에서 제128조 2항으로 자리를 옮겨 문구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과거 대통령들이 헌법을 고쳐 정권을 연장했던 전례를 반영한 결과다.


전례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1954년 2차 개헌이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길을 연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이다. 둘째는 1969년 6차 개헌으로 최대 2회였던 연임을 3회까지 넓혀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을 가능케 했다. 셋째는 1972년 7차 개헌이다. 중임 제한 자체를 삭제하고 간선제로 바꿔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텄다. 이런 '현직 수혜형' 개헌을 무력화하는 것이 128조 2항의 핵심이다.

"국민이 결단"…법제처장과 동일한 발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4부 요인 회동에서 조정식 국회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조 의장의 해명에도 단순 실언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6선 친명계 중진으로 이 대통령의 정무특별보좌관까지 지낸 인물이 발언의 정치적 파장을 가늠하지 못했겠느냐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여론 관측 ▲당내 결속 ▲담론 확장 ▲개헌 협상 카드 등 4가지 측면에서 계산된 발언일 수 있다는 해석이 거론된다.

첫째는 여론 관측이다. 근거는 메시지의 반복성이다. 조원철 법제처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4년 연임제 개헌 시 이 대통령도 연임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결국 국민이 결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조 의장은 지난 28일 기자간담회에서 "권력 구조 개편과 관련해서 현직 대통령의 개헌 문제 이런 것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과 국민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했다.


서로 다른 인물이 시차를 두고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국민에게 결정을 넘기는 표현을 쓴 셈이다. 조 의장이 간담회에서 개헌자문위·개헌특위·로드맵을 엮어 거듭 설명한 점, 논란 약 12시간 만에 수습이 이뤄진 점도 반응을 떠보고 여차하면 회수하는 관측용 포석이라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이하 시대)와의 통화에서 "정치 경험이 많은 6선 의원 출신에 3부 요인인 국회의장이 발언의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가늠했을 것 같다"며 "한 번 여론을 보겠다는 것 아니었을까 정도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도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내에서 한번 떠보는 분위기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국민과 야당의 반응을 보다가 반발이 심하면 '그건 아니다, 오해다'라고 물러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둘째는 당내 결속이다. 5년 단임 대통령은 임기 2년 차부터 구조적으로 조기 권력 누수에 노출된다. '이 대통령의 연임'이 이론적으로라도 살아 있으면 잠재 주자군이 독자 세력화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현직의 재출마 여지가 열린 판에서 후계를 자처하는 순간 항명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결국 집권 2년 차 당내 결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려대 교수는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내 갈등이 심해지는 가운데 차기 대선 후보가 마땅치 않다"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김민석, 정청래, 강훈식 등 인물이 한동훈이나 오세훈과 겨뤄 힘들 수 있다는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권 연장을 위해선 이 대통령이 한번 더 나가는 게 최선의 방법 아니냐는 고려도 없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개헌' 띄워서 판 키우고, 거둬서 협상 지렛대

이재명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셋째는 담론 확장이다. 오버턴 윈도우(Overton Window)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오버턴 윈도우란 특정 시점에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의견의 범위를 뜻하는 정치학 개념이다. 실제로 우원식 전 국회의장은 지난 4월 라디오에서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지만 조 의장은 같은 사안을 "국민 선택"의 문제로 돌렸다. '불가능'이 '국민이 정할 일'로 논의되는 것 자체가 수용 가능한 의견의 범위가 넓어진 방증이라는 것이다.

넷째는 개헌 협상 카드다. 근거는 야권의 반대 명분 구조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 연임이 포함된 개헌 논의에는 일체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현직 연임을 협상 테이블에서 빼는 순간 이 명분은 힘을 잃는다. 이후 개헌특위에서 "가장 논란인 현직 연임은 접었는데 나머지까지 반대하느냐"는 압박 카드로 되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 의장은 의장 직속 개헌자문위에서 로드맵을 정리한 뒤 국회 개헌특위에서 내년 중후반쯤 여야가 최종 개헌안에 합의하는 구상을 밝힌 상태다. 국민의힘이 참여하지 않으면 개헌안 의결에 필요한 재적 3분의 2(200석)를 채울 수 없는 만큼 현직 연임 논란의 정리가 개헌 논의의 첫 관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