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의 북상 진로를 더듬어보았다. 예측하기 어렵다는 일기와 황사 속에서도 봄은 천천히 예전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었다. 봄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사람의 발걸음과 같은 속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전나무 숲길을 거닐다
거제도와 여수에서 동백꽃 소식이 들려왔다. 화개장터 섬진강 매화꽃 마을에서는 벌써부터 ‘꽃잔치’가 열렸다. 진해 왕벚꽃은 여좌천에도 경화역 철로 위에도 안민도로 산길에도 피어나 온통 꽃천지를 만들었다.
남도에 상륙한 봄은 제 스스로 길을 내며 온 산천에 총성처럼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들은 이 땅 곳곳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피어난다. 봄은 그렇게 익어가고 사람들 마음은 봄 따라 분주하다.
들뜬 마음 이끌고 나선 꽃마중 길, 내소사에 이르러 차분해진다. 내소사는 오래된 봄이 빛나는 곳이다.
내소사는 약 1400년 전인 백제시대 무왕 34년경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선 인조 때 청민선사가 중창했고 이후 1902년에 증축했다. 조선 인조 11년에 중건한 대웅보전이 아담하다. 연꽃문양 꽃문살은 절에 피어난 벚꽃보다 섬세하고 아름답다. 천년하고도 또 수백번의 봄이 고인 내소사는 오래된 세월처럼 봄도 차분하다.
꽃 피어난 절마당에 서려면 전나무숲길을 통과해야 한다. 하늘을 덮은 키 큰 전나무 아래로 길이 났다. 침엽수림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향이 몸을 적신다. 푹신한 흙길에서 발걸음은 더 느려진다. 주위 것들에 눈길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다. 여유가 넘쳐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나온 손자의 모습은 고목에서 피어난 새순 같다. 이제 막 사랑을 확인한 것 같은 연인들은 숲이 쳐 놓은 보호막 아래서 더 행복해 보인다.
이 숲길은 세속과 분리된 또 다른 세상임에 틀림없다. 숲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 편안해 보인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정화의 통로이자 비속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다.
내소사 절집
◆고목에 피어난 봄
전나무숲길 끝에 절이 있다. 화려한 단청도 없고 웅장한 절집도 없다. 능가산 산줄기 아래 낮게 엎드린 작은 절집 몇채가 내소사의 전부다.
절마당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에 새순이 돋고 오래된 벚꽃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화르락’ 피어난 벚꽃도 내소사에서는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흙조차 기름기를 머금은 것 같이 무겁고 진득하다.
1400년 가까운 세월은 내소사 작은 절집을 옹이처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래된 느티나무를 지나 절집 기와가 보이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꽃눈’ 되어 흩날리는 벚꽃이 절집 기와 위에, 사람들 머리 위에 떨어지면서 반짝인다.
흩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아름다움을 넘어선 애절함이 느껴진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고목에 피어난 새순과 꽃잎에서 오래된 것이 빛나는 순간을 느낀다. 전나무숲길을 되걸어 세속으로 다시 나왔다. 봄을 닮은 아이들이 전나무숲길을 아장아장 걷는다.
채석강 바닷가 풍경
◆채석강, 바닷가의 산책
내소사에서 나와 차를 달리다가 30번 도로를 만나서 격포 가는 길로 우회전한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채석강으로 간다.
채석강은 1억년도 더 된 퇴적층이 절벽을 이루어 1.5km 정도 뻗어 있는 곳으로 그 풍경이 기이하고 아름답다.
채석강은 강이 아니라 절벽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띄우고 술을 먹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 풍경을 닮았다고 해서 ‘채석강’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채석강 북쪽에는 해수욕장이 있고 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 붉은 절벽인 ‘적벽강’이 이어진다. 이 모든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중 백미는 채석강이다.
수천개의 층으로 쌓인 거대한 바위절벽 옆을 거닐었다. 파도가 잘게 부서지는 바닷가 바윗길에서 차분하게 걸었다.
켜켜이 쌓인 세월 그 맨 아래층에는 1억5000만년 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세월의 어느 봄날이 화석으로 묻혀 있을 것이다. 그때도 오늘처럼 꽃은 피었고, 푸르른 잎이 지천으로 번져 있었겠지.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봄이 쌓여 있는 바위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바다 향기 진한 해산물을 안주로 곁들였다.
술잔에 이런 저런 얘기를 담아 장사하러 나온 아줌마에게 한잔 권했다. 함박웃음 짓는 아줌마 얼굴에 세월의 나이테 같은 주름이 번진다. 아줌마와 나는 그렇게 서너잔 더 마셨고, 아줌마는 오늘 장사 끝이라며 봄이 켜켜이 쌓여 있는 퇴적층을 밟고 위로 올라간다. 화석으로 묻혀있던 봄이 지상으로 환생하는 것 같았다.
곰소바다
◆노을 물든 바닷가에서 걸음을 멈추다
마지막 목적지는 곰소항이다. ‘곰소’라는 이름은 곰살맞다.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곰소가 가까워지자 길가에 ‘젓갈’ ‘소금’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곰소항으로 들어갔다. 곰소는 그 이름만큼이나 친근하고 아늑했다. 항구로 가는 길가에 젓갈과 소금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었다. 바다 향기가 퍼진다. 오래된 가게 뒤에 젓갈과 소금을 생산해 낸 바다가 출렁이고 있을 것이다. 작은 항구에 떠 있는 작은 배들, 오래된 집과 길거리에 바닷가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젓갈집 유리진열장 안에는 황석어젓, 밴댕이젓, 어리굴젓, 꼴뚜기젓, 낙지젓, 갈치속젓, 멍게젓, 창란젓, 새우젓, 명란젓, 오징어젓… 열댓가지의 젓갈이 수북하다. 이쑤시개로 찍어 맛을 본다. 젓갈맛이 다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젓갈의 숙성도와 양념을 넣는 손맛 때문에 그 맛이 조금씩 다르다. 집마다 맛있는 종목이 달랐다.
곰소 바다에서 건져 올린 바닷물에서 곰소의 소금이 나고 그 소금으로 젓갈을 담그니 곰소소금도 젓갈도 유명한 것이다.
곰소항으로 가는 길 가에 오래된 염전
우리는 곰소의 상징인 젓갈정식을 먹기로 했다. 곰소항을 빠져 나와 곰소염전 앞 식당으로 들어갔다. 기본 반찬과 국을 비롯해 아홉가지 젓갈이 밥상에 올랐다. 젓갈만으로도 밥 한공기가 거뜬하다.
식당 앞 곰소염전 소금창고가 정겹다. 해거름에 곰소항을 다시 찾았다. 구름 낮게 깔린 하늘에서 빛기둥이 바다로 쏟아진다.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고 저 멀리 바다도 하늘도 노랗게 물든다. 꽃 피어 분주한 봄날 차분한 하루가 지고 있었다.
곰소소금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로 - 줄포IC - 곰소 - 내소사 - 격포 채석강
*호남고속도로 - 정읍 - 김제․부안방면 - 고부 - 줄포 - 곰소 - 내소사 - 격포 채석강
대중교통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센트럴시티)에서 부안 가는 차를 탄다. 오전 6시5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약 5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2시간50분 정도 걸린다.
현지교통 부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뒤 인근에 있는 군내버스 타는 곳에서 내소사 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내소사 입구 앞에서 내리면 된다. 하루 10여회 운행. 약 50분 정도 걸린다. 내소사에서 격포로 가는 군내버스는 하루에 5대 밖에 없다. 내소사에서 격포(채석강)까지는 약 21km 거리다. 내소사에서 곰소항까지는 약 6km 거리다. 부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소사까지 택시를 타면 20~30분 정도 걸리며 약 2만원 정도 나온다.
<숙박>
곰소항과 내소사를 들러 격포(채석강)에 도착해서 주변에 있는 대명리조트와 모텔, 민박 등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맛집>
곰소항 주변 또는 곰소염전 앞에 젓갈정식 파는 식당이 있다. 황석어젓, 밴댕이젓, 창란젓, 낙지젓, 갈치속젓 등 아홉가지 젓갈이 밥상에 오른다. 내소사 입구 주변, 격포(채석강) 주변에도 식당이 있다.
<요금안내>
*내소사 사찰관람요금 500~2000원(입장시간 오전 8시~오후 6시). 주차요금은 1시간에 1000원이며, 1시간 이후 10분 마다 250원 추가(비수기는 200원). 800㏄ 이하 차는 50% 할인(주차요금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징수하는 것임).
*채석강 입장요금은 없다. 주차요금은 1시간에 1000원. 1시간 이후 10분 마다 250원.
<문의>
내소사 063-583-7281
변산반도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채석강 문의) 063-582-7808
부안 군내버스(스마일교통) 063-582-6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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