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와 금융은 JY, 건설과 호텔은 BJ, 광고와 의류는 SH." 3세로의 경영승계를 앞둔 삼성그룹 안팎에서 나오는 말이다. 삼성전자와 금융계열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물산과 호텔신라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제일기획과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은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으로 계열 후계구도가 정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기업 승계를 앞둔 삼성그룹은 현재 지분을 정리하거나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삼성그룹 내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는 지난해 12월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양수했다. 주식시장 상장도 앞두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계열사는 삼성생명이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한 고리를 담당하는 삼성생명은 지분구조 재편과 함께 중간금융지주사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6월13일 삼성화재 자사주 189만주(4%)를 사들였다.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보통주 748만주(4.79%)는 삼성화재에 매각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와 증권시장에서는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로의 전환에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기에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제기됐다. 삼성생명이 이 두 사안을 준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재용 부회장, 생명 통해 금융계열사 지배?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서는 화재·카드·증권 등 주요 금융계열사의 지분 30%(비상장사 50%)를 확보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화재 지분 14.98%를 갖고 있다. 삼성증권 11.1%, 삼성카드 34.41%, 삼성자산운용 5.5%, 삼성선물 41.0%를 보유 중이다.
삼성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사들여야만 지주사로 전환이 가능하다. 삼성카드 역시 최대주주가 삼성전자(37.45%)이기 때문에 삼성생명이 최대주주가 되기 위해서는 추가 지분매입이 필요하다.
주식시장과 보험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매각한 삼성물산 지분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하면서 5353억원을 챙겼다. 업계에서는 이 자금을 활용해 나머지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사들일 것으로 분석했다.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하려는 이유 중 하나로 오너 일가의 영향력 확대가 꼽힌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다.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순환출자구조에서 삼성생명이 화재와 카드·증권 등을 지배하는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되면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로 알짜 금융사들까지 지배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회장"이라며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되면 이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지 않고도 금융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법 개정되면 삼성전자 지배 '흔들'
삼성그룹의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안된다. 개정안 통과여부는 삼성생명뿐 아니라 보험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삼성생명은 오래 전부터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고객돈으로 회사를 지배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삼성생명의 자산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갖고 있어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7.21%를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3.38%)보다 많은 최대주주다. 시민단체들은 삼성생명에 납입한 고객들의 돈(보험료)이 이건희 회장 일가 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지난 4월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정무위원회)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보험업법은 '대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 그리고 대통령이 정하는 자회사가 발행한 주식 및 채권에 대해 총자산의 3% 이상 투자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투자한도를 정하는 기준가액은 재무제표상의 가격(시장가격)이 아닌 취득원가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삼성생명 총자산의 3%는 4조7000억원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투자에 19조1000억원을 썼다. 총자산의 3%를 초과한 것. 이는 기준가액을 취득원가로 규정해 가능한 일이다.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기준가액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으로 바꾸자는 것.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4% 이상을 5년 이내에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이 3%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영향력도 하락한다.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이종걸 의원실 관계자는 "은행 등 다른 금융권에서는 시장가격을 근거로 주식을 평가한다"며 "수십년간 보험업법이 개정되지 않은 것은 삼성생명에게 특혜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으로 영향을 받는 생보사는 삼성생명이 유일하다. 따라서 세간에서는 이 법안을 '삼성생명법'으로 부른다.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3세 승계를 위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며 "삼성생명은 물론 그룹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커 회사 관계자들이 통과 여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6·4 지방선거 전날인 지난 6월3일,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 상장을 발표했다. 지난 3월31일에는 삼성SDI와 제일모직 간의 합병계획을 발표했다. 이날은 상장사 등기이사의 연봉이 처음 공개되는 날이어서 언론이 관심이 이곳으로 집중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의 지분을 인수하고 삼성물산 지분을 넘긴 것은 지난 6월13일로 금요일이었다. 증권시장이 마감한 오후 늦게 이와 관련한 내용을 공시한 것이다. 퇴근시간인 데다 주말을 앞둔 시점이라 언론 등의 관심이 비교적 적었다.
삼성 금융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이 사안은 몇몇 고위층만 알고 있었다"며 "발표시기를 금요일로 택한 것에는 약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나 경영상 중요한 일정을 주말이나 연휴, 국가적 이벤트를 앞두고 발표한 것에 의도가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삼성 측은 "원래 계획대로 발표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손사래쳤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