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성 쌍둥이'가 따로 없다. 정유주와 석유주의 현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석유·화학주라는 같은 운명을 타고났지만 SK이노베이션, S-OIL, GS 등 정유주는 52주 신저가를 고쳐 쓴 반면 극동유화, 한국쉘석유, 미창석유 등 이른바 석유주는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정유주와 석유주의 엇갈린 운명은 '윤활유사업'에서 비롯됐다. 올해 들어 수익성을 내고 있는 윤활유사업의 비중에 따라 투자자의 선택이 갈린 것이다. 하반기에도 석유주에 투자심리가 쏠릴까. 정유주와 석유주의 하반기를 전망했다.
◆윤활유사업에 달린 투자심리
석유주의 대장주 한국쉘석유는 지난 11일 장중 60만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장 마감 기준으로 연초 대비 11일 현재 28.38% 급등한 것이다. 극동유화와 미창석유 역시 지난달 29일과 20일 장중에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올 초 대비 현재 주가를 비교하면 각각 7.81%, 5.29% 올랐다.
석유주의 잇단 상승은 윤활유의 매출증가가 이끌었다. 윤활유란 원유에서 여러 정제공정을 거쳐 제조된 '기유'에 각종 화학첨가제를 배합해 성능을 더욱 강화하거나 보완한 것으로 마찰을 감소시키는 윤활제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아시아시장에서는 자동차 및 기계 산업에서 윤활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수요를 바탕으로 올 들어 윤활유시장이 호황국면에 접어들면서 윤활유사업 비중이 높은 한국쉘석유, 극동유화, 미창석유 등 윤활유제조업체가 강세를 나타낸 것이다.
한국쉘석유의 경우 매출에서 윤활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73.63%에 달한다. 이 회사는 총 매출액 1246억7100만원 중 상반기 윤활유 판매로만 국내에서 685억9100만원, 국외에서 232억800만원을 올렸다. 다른 업체 또한 사정은 엇비슷하다. 극동유화(62%), 미창석유(64.8%)는 매출 측면에서 윤활유 비중이 절반을 크게 넘어섰다.
반면 매출에서 석유·화학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유주의 경우 업황부진으로 주가가 바닥을 긴 지 오래다. SK이노베이션, S-OIL, GS 등 정유주들은 윤활유부문이 10% 안팎의 비중에 그쳐 투자자의 투심을 자극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올 상반기 매출에서 정유·화학부문이 94%에 달했으나 석유사업(75%)에서만 1798억5800만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윤활유사업에서 1452억5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대에 그쳐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S-OIL 역시 윤활유의 비중은 6.9% 수준으로 상반기 1250억75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81.1%의 비중을 차지하는 정유부문이 2059억2900만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GS 또한 자회사 GS칼텍스를 통해 윤활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반기 매출액에서 윤활유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1.4%지만 74.7%에 육박하는 정유부문의 영업실적과 비교하면 작은 고추가 맵다. 같은 기간 윤활유사업은 1181억200만원의 이익을 올린 반면 정유사업은 2369억4700만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처럼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부문의 업황부진으로 S-OIL은 지난 5일 장중 기준 52주 신저가를, SK이노베이션과 GS 역시 지난 8월21일과 6월20일 각각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장 마감 기준으로 비교해도 현재 주가가 크게 빠졌다. SK이노베이션은 35% 급락했으며 S-OIL과 GS 양사 모두 37.93%, 26.42% 하락했다.
이에 대해 박중선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윤활유사업은 정유사에서 유일하게 이익이 나는 부문"이라며 "하지만 정유사의 경우 전반적으로 석유·화학부문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윤활유부문은 비중이 낮다"고 설명했다. 박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 윤활유 비중이 높은 중소업체(한국쉘석유, 극동유화, 미창석유 등)를 중심으로 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유주, 윤활유 비중 올리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정유사들도 윤활유부문에 대한 비중 높이기에 나섰다. 정유·화학사업의 부진을 윤활유사업으로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윤활유사업 담당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가 지난 1일 윤활유 대표 브랜드인 지크의 독자 유통망브랜드 '아임지크'(I'm ZIC)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관계사 SK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자동차정비소인 스피드메이트의 전국 700여개 지점과 대형카센터, 오일교환소 등으로 아임지크의 판로를 넓혀 사업확장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한 고급 윤활유 수요증가에 부응하기 위해 국내 에너지업계 최초로 해외에 독자 윤활유공장을 건설하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까지 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S-OIL은 지난 5월 윤활유브랜드 '에쓰오일7'을 출시하고 업계 최초로 TV광고를 통해 윤활유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다. 경쟁사 대비 다양한 제품군을 활용해 내수판매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단일공장으로 세계 2위 규모의 생산시설을 보유한 점도 S-OIL만의 자랑거리다.
GS칼텍스 또한 GS엠비즈가 운영하는 자동차정비가맹점 오토오아시스에서 자사 윤활유제품 '킥스 파오', '킥스 G-1' 등을 판매하며 사업확장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윤활유 비중을 높이는 것이 정유주의 불황 타개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유가가 추가 하락하면서 정유업체의 3분기 실적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어서다. 지난 7월1일부터 9월11일 현재까지 두바이유는 12.4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3.6달러 하락했다.
곽진희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내 원유수출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원유수출은 단기에 결정될 문제는 아니지만 당분간 유가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사회과학연구소인 브루킹스(Brookings)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수출이 허용될 경우 내년 걸프지역에서만 하루 150만배럴의 원유가 증산될 것이고 휘발유가격은 배럴당 3~5달러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곽 애널리스트는 이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유가하락에 따라 3분기 정유사의 부진한 실적이 예상된다"며 "국내 정유사에 유가와 정제마진 측면에서 어려운 시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중선 애널리스트는 "아직까지 정유업체는 석유화학 정유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윤활유 비중을 높이는 것으로 하반기를 전망하기는 어렵다"며 정유주에 대한 투자판단을 뒤로 미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