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는 아직 앙상한데 밑둥 주위의 신우댓잎은 푸른물이 배어있다./사진=김미선 하루하루가 그날이 그날 같고 일년이 매양 그해 같이, 특별할 것도 없는 무료한 나날에 봄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바람이 꽃향기를 풍기며 유혹의 말을 속삭입니다. "눈앞의 좋은 경치를 두고 즐기지 않는다면 인생을 허비하는 것일 뿐. 한번뿐인 인생인데 재미나게 살아야지…, 헛되이 지나가버린 시간은 되돌릴 재간이 없는 것을!"
그렇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은 평생을 쫓아다녀도 다 볼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때같이 좋은 계절은 단 1초라도 아껴가며 즐겨야 합니다. 문득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20년 전 20대 처녀 때 가을산행을 했던 속리산이 생각났습니다.
가을과 봄의 속리산이 어떻게 다를까. 봄이 온 속리산을 보고 싶어 죽이 맞는 친구들을 서둘러 소집하였습니다.
가은읍에서 화북면 가는 901번 지방도로 옆의 솔밭.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으로 '힐링'/사진=김미선 이번에는 화북면에서 문장대로 등반하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문경시 가은읍에서 상주시 화북면 문장대 주차장까지 가는 길, 901번 지방도로는 봄이 온 대지의 아름다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가는 차들도 뜸한 한적한 도로변 논둑길의 연둣빛 풀들은 맑고 싱그러운 향을 내뿜고, 도로를 따라 흘러가는 시냇물 양쪽 언덕으로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솔밭에서는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진한 솔향기를 전해줍니다.
만물이 생장하는 경이로운 현장, 봄의 대지는 신비롭다./사진=김미선 세 시간 가까이 쉬엄쉬엄 걸어 문장대 암봉에 올랐습니다. 아침식사 후 바로 트레킹에 나섰기에 3시간여의 등반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파른 산길과의 싸움은 결코 대가가 없지 않았습니다.
화창한 날씨 덕에 저 멀리 산들의 구릉이 끝없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시야가 틔어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신비한 경관은 이렇듯 조그만 수고라도 치러야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상에는 많은 상춘객들이 줄을 이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젊어서는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풍경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면 왠지 '사진을 남겼으니 이제는 잊어버려도 된다'는 느낌이 들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든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를 피해가지 못할 거라는 우려도 있어 증명사진 찍듯 인증샷을 빠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산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바뀌었다. 언제나 함께하는 트래킹 친구들./사진=김미선 오늘 이곳 속리산의 품속에는 바람, 계곡, 물, 돌, 풀과 꽃, 나무, 그리고 이를 감상하려는 선남선녀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낮은 곳에는 도화나무와 배꽃이, 정상에서는 만개한 개나리가 산색의 변화에 한몫하며 세상 속 선경(仙境)을 이루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26일 서울의 나무들은 벌써 한여름의 녹색인데 속리산의 숲은 앙상한 가지에 옅은 녹음의 분위기만 느껴진다./사진=김미선 봄과 가을의 속리산을 20년 시간을 두고 만나보았으니 다음 40년 동안 겨울과 여름의 속리산을 다시 찾아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