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애는 말했어, 너무 멋있어 형, 나도 형처럼 되고 싶어… 69평짜리 욕조 딸린 집에 주차장엔 차 4대 고스트(롤스로이스 고스트), 람보(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 G(벤츠G63), S500(벤츠S500) 다 외제’.
자수성가 래퍼로 유명한 도끼가 빈지노 더콰이엇과 함께 쓴 곡 ‘록킹 위드 더 베스트’(Rockin‘ with the best)의 가사 중 일부다. 도끼는 자신의 화려한 소비습관을 가사에 가감 없이 드러내며 재력을 과시한다.
사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가지다. 사람들은 사치를 ‘필요 이상의 물건에 돈을 쓰거나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프리미엄이 붙은 제품에 열광한다. 사치품은 죄책감과 자부심을 함께 끌어낸다. 부담이 되면서도 기쁨을 주는 양면성을 갖는다. 장기간 지속되는 불황에도 초고가상품이 쉽게 타격받지 않는 이유다. 언제부턴가 도로에는 벤츠, 아우디, BMW 등 고급차가 부쩍 늘었다.
상류층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까지 고가품에 목매는 이유는 뭘까. 허지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에게서 사치품의 조건과 사치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들어봤다.
“불황이라 해도 모든 사람이 가난한 것은 아니잖아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불황과 관계없이 고가품을 구입해요. 아마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사치품 소비는 계속될 겁니다.”
허지성 연구원은 불황에도 가격이 비싼 제품의 수요가 줄지 않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류층의 소비는 사실 중요하다. 이들의 구매패턴은 전체 소비시장에서 작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소비트렌드를 선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중산층에 이어 저소득층의 소비패턴으로도 침투한다.
허 연구원은 “과거에는 자기 취향의 과시가 ‘고가브랜드 소비’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고가의 럭셔리·프리미엄브랜드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은 지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이 분위기를 이용해 당시 기업들은 ‘귀족마케팅’을 치열하게 전개했고 명품을 모르던 사람들까지 고가제품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허 연구원은 “당시 고가품 카테고리를 지향하는 브랜드들은 특정 지위를 상징하는 생활패턴을 제품과 연관지어 지속적으로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광고와 홍보를 진행해 고객의 머릿속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노력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제품가격이 브랜드의 희소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허 연구원은 명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소비트렌드도 변화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전에는 명품 백, 외제차 등 고가제품 카테고리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는데 점차 고가품 카테고리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며 “소비자가 ‘물질적’ 사치보다는 스토리텔링 개념이 가미된 ‘문화적 가치’에 중점을 두면서 서비스나 체험의 영역으로 (사치품의) 카테고리가 고도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비싸다고 알려진 제품을 사는 데 만족했지만 요즘은 알 수 있는 사람만 알아보는 희소가치가 중요해졌다”며 “이미 가치를 인정받고 소비자의 개별 취향까지 만족시키는 희귀한 제품이 (사치)소비시장을 장악했다”고 덧붙였다.
가격보다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우월한 정보력과 취향을 내보일 수 있는 ‘덜 알려진’ 희귀한 제품에 대한 선호가 사회적 소비의 영역으로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소셜미디어 진화와 맞물린 신소비트렌드
허 연구원은 이 같은 변화가 수년간 진행된 브랜딩환경의 변화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TV·신문·라디오·잡지 등 전통매체의 독자층은 감소한 반면 블로그·소셜미디어 등으로 대표되는 쌍방향 미디어 소비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미디어환경의 변화가 소비자 구매패턴의 양상을 바꿔놓았다는 얘기다.
허 연구원은 “소비자의 사치 열망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요인 중 하나로 소셜미디어를 꼽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가 인기를 끌면서 당시 널리 알려진 고가상품으로 자신을 과시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블로그·페이스북 등이 활성화되면서 희소성의 가치 혹은 장인정신이 부각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있고 정서적 만족을 주는 장인정신의 가치가 떠오르면서 (일부 기업은) 진정성을 호소하기 위해 고가제품을 마케팅할 때 일부러 제작과정을 반영하기도 한다”며 “다양한 취향의 선도자들은 SNS를 통해 나만의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특정상품을 지인들에게 추천하거나 공유해 관심과 부러움을 얻고 이로써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내비친다”고 설명했다.
◆신용카드 할부의 유혹… 고가제품 쉽게 구매
신용카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신용카드는 사람들의 현재 욕망을 즉각 충족해주면서 ‘선저축 후소비’였던 과거의 소비패턴을 ‘선소비 후지불’로 바꿔놓았다. 특히 신용카드의 할부기능은 고가품 구매를 부추겼다. 할부로 높은 가격부담을 나눌 수 있어 일시불로 살 수 없는 물건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던 것.
허 연구원은 “요즘은 어떤 카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자체로도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할 수 있다”며 “카드사들은 단순 할인혜택뿐 아니라 체험에 기반한 특정한 가치를 강조하며 VIP를 모으는 마케팅기법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들은 여전히 회원확보를 위해 ‘혜택강화’ 경쟁을 벌인다. 이는 사치소비와 연결된다. 혜택을 받기 위해 필요 이상의 금액을 쓰다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에 따라 허 연구원은 합리적 소비습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불황이 너무 길게 지속된 탓인지 유행을 쫓는 과거의 경향을 떠나 자신의 원칙과 신념에 따라 소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고가품에 대한 카테고리가 넓어지면서 각자의 취향이 보다 중요해진 시대가 온 거죠. 조금 비싸더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이 행복감을 주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고가품을 구매하는 게 무조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소비가 합리적이려면 상품의 수단과 목적도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 어떤 소비가 합리적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취향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여력 내에서 소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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