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들이 최근 몇년간 서울 강남 아파트 재건축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경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재건축 시공권을 얻으려고 조합원들에게 선물과 현금 등을 나눠준 혐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보여주기식 수사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시공권 경쟁으로 경쟁사 폭로전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5일 건설업계 매출 1위 기업인 현대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아파트 재건축조합원들에게 시공사 투표를 청탁하려고 금품을 나눠준 혐의다.
경찰이 수사 중인 곳은 현대건설뿐만이 아니다.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시공능력 10위권 대형건설사들이 지난해 9월부터 잇따라 경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모두 강남 재건축과 관련한 뇌물 혐의다.
이번 수사는 한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결과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경쟁사가 조합원들에게 고가의 상품권과 가방, 현금 등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이런 폭로전이 발생한 것은 최근 몇년 동안 재건축시장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건설사 간 시공권 경쟁이 치열해진 게 원인이다. 박근혜정부의 규제완화와 집값 폭등으로 분양가가 올라가고 모든 청약이 매진되면서 재건축이 건설사의 주수익원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롯데건설은 공사비 1조원 규모의 잠원동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 당시 조합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관련 수사는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대우건설은 반포동 신반포15차를 수주하면서 금품을 제공한 혐의다. 현대건설도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려고 홍보대행사 등을 동원해 조합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건설업계는 금품 규모가 수십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건설사는 사실상 솜방망이처벌
이번 수사의 초점은 건설사와 대행을 맡은 아웃소싱업체 간 책임 소재다. 조합원에게 직접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주체는 대부분 아웃소싱업체 직원이라 건설사는 책임을 회피할 여지가 있다. 아웃소싱업체 직원이 건설사에서 파견되거나 금품제공이 묵인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웃소싱업체가 홍보를 위해 자체적으로 금품을 이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경찰은 이를 파악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라고 본다.
건설사들은 아웃소싱업체의 개별적인 행동이라는 입장을 내세운다. 경찰은 증거와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내사를 진행, 혐의점을 포착한 후 추가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올 초 수사 진행상황에 대해 “거의 좁혀졌고 일부 사업장은 홍보대행사 대표들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사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가 조합원에게 시공권을 빌미로 금품을 제공하는 것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이다. 현행법에 따라 불법혐의가 확인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또 공공공사 입찰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비리형태는 다르지만 올 초 GS건설 상무급 임원은 재건축 과정에서 건축사사무소로부터 1억원가량의 뒷돈을 받고 일감을 준 혐의로 구속됐다. 포스코건설과 금호건설 관계자도 같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문제는 처벌수위다. 반포주공1단지의 경우 공사비가 2조6000억원에 달하는데 건설사가 내는 벌금은 수천만원에 그쳐 사실상 솜방망이처벌이라는 지적이 있다. 재건축 금품비리는 지난 13년 동안 행정처분이 내려진 사례가 없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재건축 금품비리는 관행적으로 이어져왔는데 가장 큰 문제는 조합에 자금이 부족하고 조합장이나 임원들이 정비사업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시공권 유지하면 유명무실한 법
이런 논란이 일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말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제도 전면 개선방안’을 발표, 가장 강력한 처벌인 계약취소를 통해 시공권을 박탈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건설사 책임이 인정되면 최대 사업인가가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 개정까지는 국회 논의와 업계 반발이라는 산을 넘어야 하므로 아직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합 측이 과도한 규제로 사업을 저해할 수 있다는 민원을 제기해 정치권이 법안 통과에 소극적이고 국회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경찰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금전적인 이익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오는 27일 시공사 선정을 진행하는 서울 흑석뉴타운9구역 재개발사업 참여자 롯데건설은 확정이익 보장제를 통해 조합원 1인당 평균 3억원의 개발이익을 보장하고 3000만원을 선지급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수사를 시작한 롯데건설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데다 아직까지는 처벌수위가 낮다는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이슈가 된 문제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준비해왔고 특별한 결과 없이 조사가 종료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현재 수사 중인 곳 외에도 삼성물산, GS건설 등 강남 재건축에 뛰어들었던 대형건설사 대부분이 수사선상에 오른 상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0호(2018년 5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