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기재부 차관/사진=임한별 기자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로 집계됐다.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통계작성 이래 54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나라가 '물가 하락→저성장'으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에 직면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오지만 정부는 '디플레이션'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우울한 경제에 낙관론을 펼치는 정부의 입장에 전문가들은 "심상찮은 징조"라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낙관론 정부 "경기불황 우려 단계 아냐"  

1일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2015년을 100으로 봤을 때)로 1년 전보다 0.4% 하락했다.


올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0.038% 하락해 사실상 마이너스를 가리킨 적은 있었지만, 소수점 한 자릿수까지만 따지는 공식 상승률은 0.0% 보합에 그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1965년 전도시 소비자물가지수 통계 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전년비 상승률은 1966년부터 집계했다.

정부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낙관론’을 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물가동향 발표 직후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일각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지만, 물가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해서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며 “공급 충격에 의한 2~3개월 단기 물가 하락으로 연말부터 0% 중후반 물가 상승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정부의 입장에 힘을 보탰다. 지난달 30일 한은은 주요국 물가 하락기의 특징’ 보고서를 통해 “물가 하락은 많은 국가에서 적지 않은 빈도로 나타났지만 대부분 2분기 정도 단기간 내에 상승 전환했다”며 “디플레이션 현상은 일본 등 일부 국가에 국한한다”고 설명했다.
 
비록 8월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일본의 사례와는 아직 거리가 멀어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은은 디플레이션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주택 등 자산 가격의 조정이 수반돼야 하는데 아직 한국은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제 기준을 적용해 봐도 한국은 아직 디플레이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년 이상 물가가 하락했을 때를 디플레이션으로 본다.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평가하는 IMF의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DVI)로도 한국은 발생 위험이 ‘매우 낮음’으로 평가된다.

◆째깍째깍 'D공포'… 재정·통화정책 동원해야 

정부의 진단과 달리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GDP디플레이터(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눠 사후적으로 계산하는 값)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9월 기대인플레이션은 한은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02년 2월 이후 최저치인 1.8%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물가지표의 바탕이 되는 소비자·생산자물가지수도 이미 마이너스를 기록해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더 떨어지고 있어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소비와 투자가 안돼 물가가 떨어지는 상황까진 아니지만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하고, 이를 위해 투자를 활성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에 해당되는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 등 경기 둔화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정책을 동원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