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윤슬빈 기자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6·25 전쟁과 민주화 문화 유산 등 7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에 등록하는 문화재는 영주 부석교회 구 본당과 6·25 전쟁 군사 기록물(공군 전투비행단), 보병과 더불어 악보, 근대기 제작 진전 봉안 어진,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 혁명 참여자 조사서,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 혁명 계엄 포고문, 4·19 혁명 부상자 명단 (고려대학교 4·18 학생 의거) 등이다. 올해로 6·25 전쟁은 발발한지 70년, 4·19 혁명이 일어난 지 60년 되었다.
또한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대한제국애국가, 동해 북평성당 3건과 대한제국기 군복 Δ전(傳) 대원수 상복을 포함해 Δ참장예복 보병 부령 상복 Δ보병 정위 예복, 보병 부위 예복 Δ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 Δ기병 정위 예복 및 상복 Δ헌병 부위예복 및 상복(홍철유) Δ군위 부위 예복 9건 등 총 12건을 등록 예고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89호 '영주 부석교회 구 본당'은 건립 당시의 건축적 상황들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특히, 흙벽돌을이용하여 축조한 벽체와 목조로 된 첨탑 등이 비교적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에 희소성과 진정성 면에서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0호 '6·25전쟁 군사 기록물'(공군 전투비행단)은 전쟁 당시 공군 제10전투비행단과 관련된 유물로제10전투비행단 종합보고서, 비행기록수첩·출격 표시 작전지도, 10비 군사일지, 조종사 출격일지, 김영환 장군 명패 총 6건 8점이다.
김영환 장군은 비행전대장 재직 당시 무장공비가 잠입한 합천 해인사 폭격명령을 거부해 문화유산을 지켜낸 공적으로도알려져 있다. 해당 유물들은 6·25전쟁 시 공군의 작전수행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희귀하며, 역사·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1호 '보병과 더불어 악보'는 6·25 전쟁 당시 마산으로 피난했던 작곡가 이상근(1922∼2000)이 종군작가로 참전한 유치환의 전쟁 서정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토대로 6·25전쟁 기간 중(1952.8.3.~8.21) 관현악과 합창이함께하는 칸타타 형식으로 작곡한 친필악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그 경험을 작품으로 완성하여 전쟁 당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2호 '근대기 제작 진전 봉안 어진'은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왕실 회화로서 조선왕조의 정통성과권위를 표상하는 것으로, 태조어진(홍룡포본)·원종어진·순조어진·순종어진의 총 4건 4점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소개(疏開)하였으며 전쟁 직후 보관창고 화재로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용안의 일부와 곤룡포·신발·용상·채전등의 색채와 문양 등이 잘 보존되어 역사·예술·학술면에서 가치가 크다.
또한 국가등록문화재 제793-1호로 등록되는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혁명 참여자 조사서'는 4·19 혁명 당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학생들 주도로 ‘4월혁명연구반’이라는 조사반을 구성하여 작성한 구술기록 자료다. 대상별 총 9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설문항목은 정치에 대한 관심, 그 당시의 심정 등을 묻고 있어 조사 대상별 정치의식, 사회의식 등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히, ‘데모사항조사서’에는 참여 동기?경과?시간?장소?해산 시까지의 충돌(경찰과 충돌, 깡패, 부상, 살상, 공포) 등이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2·28, 마산 3·15 시위 참여자를 대상으로 구술 조사한 자료로서 현재까지 유일하다.
해당 유물은 4·19 혁명 당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질문하여 작성한 설문지로 현장의 실증적인 기록물이다.
이밖에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 혁명 계엄 포고문은 국가등록문화재 제793-2호로, 4·19 혁명 부상자 명단(고려대학교 4?18 학생 의거)은 제794호로 각각 등록된다.
한편 위에 등록되는 문화재들과 별도로, 이번에 등록이 예고되는 유산 가운데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는 안동의병 중 한사람이었던 이긍연(李兢淵, 1847∼1925)이 을미사변 이후인 1895년 12월1일부터 1896년 10월 11일까지 직접 보고들은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의진의 결성부터 투쟁활동, 해산까지의 과정과 군사력, 문중 간의 이해관계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당 유물은 을미의병의 활동 전모를 담고 있는 대표적이며 상징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70~80명가량 의병 성명이 등장하여, 의병장 이외에 의병활동 정황을 알 수 없는 현재 시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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