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 고위 인사가 최근 기자에게 털어놓은 속내다. 잦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원가(적격비용) 재산정 과정에서 대형가맹점인 현대·기아차의 소위 ‘갑질’에 카드사 수익성은 물론 소비자 피해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얘기였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금융당국은 2018년 카드 가맹점 수수료 원가를 재산정했다. 핵심은 일반 가맹점 수수료보다 낮은 우대수수료를 적용받는 가맹점의 기준을 연 매출 5억원에서 30억원까지 확대한 것이다. 카드사보다 협상력이 낮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에서였다. 더불어 가맹점 수수료 인하 대상도 연 매출 500억원 이하로 대폭 확대했다. 현재 우대수수료를 받는 가맹점은 전체 가맹점의 96%에 달한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그렇게 카드사에게 부담을 안기면서도 카드사에게 꼭 필요했던 대형가맹점(매출 500억원 초과)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 하한선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카드사가 결과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대형가맹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실제 2019년 카드사는 현대·기아차에 카드 수수료 인상을 고수했지만 현대·기아차의 ‘계약해지’라는 강수에 모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카드사는 현대·기아차에 종전 1.8% 초반대던 수수료율을 1.9%대로 올릴 것을 제안했지만 현대·기아차는 거부했다. 급기야 현대·기아차는 수수료율을 인상한 신한·KB국민·삼성·롯데·하나카드 등 5개 카드사에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카드사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1.89% 안팎으로 당초 요구안보다 낮은 수수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완성차 판매 시장에서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는 현대·기아차를 가맹점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그 만큼 카드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대형가맹점의 이런 막무가내식 횡포에 맞설 법 조항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신전문업법 18조 3항에 따르면 대형가맹점이 신용카드업자에게 부당하게 낮은 가맹점수수료율을 요구하면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금융당국이 대형가맹점을 처벌한 전례는 없었다. 즉 지금까지는 대형가맹점의 갑질 행포를 막을 법이 허수아비에 불과한 셈이다.
대부분의 가맹점엔 우대수수료를 적용하고 나머지 대형가맹점엔 ‘수수료 후려치기’를 요구받으면서 카드사는 수익성 악화를 겪어야 했다. 지난해 1~3분기 8개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5조2672억원으로 769억원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카드사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각종 대고객 혜택이 줄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카드사가 6개월 무이자 할부를 3개월 이하로 축소하거나 알짜카드 단종 등의 조치를 이미 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개 카드사의 신용카드 151종이 단종됐으며 체크카드도 44종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대형가맹점 갑질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당국이 카드사에 부담이 되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 혜택을 계속 확대하면서 정작 뿌리 깊은 대형가맹점 갑질은 뒷짐을 쥔 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당연히 그 피해는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카드업계는 올해 또 큰 숙제를 풀어야 한다. 3년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 시점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치권 등에서 애먼 카드사만 옥죄면 카드사는 대형가맹점의 눈치를 또 봐야 하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의 한숨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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