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이 안정적으로 매매를 하실 수 있도록 철저하고 완벽한 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산장애가 발생해 고객님께 불편과 실망을 끼쳐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지난달 대신증권의 전산장애 발생 다음 날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이사가 발표한 대고객 사과문이다. 전산장애 발생에 대해 대표가 직접 공식 사과에 나서는 건 드문 일이다. 증권사들이 전산장애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그만큼 증권사의 전산장애가 빈번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 증권사의 시스템 장애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증권사의 ‘내부통제·전산장애’ 유형은 1102건으로 지난해 상반기(459건) 대비 140%나 급증했다. 특히 HTS(홈트레이딩시스템),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전산장애와 리딩방 등 유사투자자문업 관련 민원이 증가했다. 

민원유형별 비중을 보면 내부통제전산장애가 39%로 가장 많았다. 펀드(14%) 주식매매(13%) 파생상품(1%) 신탁(1%) 순이었다. 증권사의 상반기 기준 전산장애 관련 민원건수는 2018년 238건, 2019년 402건, 2020년 459건에서 올해 1102건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매년 증가하던 증권사 전산장애가 코로나19를 계기로 폭발하듯 터진 셈이다. 매년 전산장애 민원이 늘고 있음에도 58개 증권사의 전산운용비는 2019년 5368억원에서 2020년 5802억원으로 434억원(8.1%) 늘어나는데 그쳤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이후 주식 투자에 나선 사람들이 늘어난데다 대형 기업들의 IPO(기업공개)에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대어급 IPO가 상장하는 날에는 평소의 100배가 넘는 접속이 몰린다. 이 때문에 올해 상반기 금융권에서 은행, 중소서민, 생명보험, 손해보험 등은 민원건수가 일제히 감소한 것과 달리 금융투자업계만 늘었다. 권역별 민원건수 증감율을 살펴보면 중소서민이 22% 감소하며 가장 크게 줄었고 생명보험(-13%) 은행(-4%) 손해보험(-2.9%) 순이었다. 금융투자는 24.2% 증가했다. 

증권사들은 전산장애 대책 마련에도 적극적이다. 디지털에 눈 뜬 증권사들은 관련 인력과 인프라 확충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이는 코로나19 시대에 대면 접촉이 줄면서 주식 등 비대면, 온라인 거래가 대세로 자리 잡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상황이 이런대도 금융당국은 증권사 전산장애에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소비자 보호를 외치면서 증권사 전산장애 문제에는 나서지 않는 금융당국의 이중적인 태도도 바뀌어야 할 때다. 소비자들의 민원이 쌓여가는데도 지난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금감원이 증권사 전산장애 신고를 받아 직접 현장 검사를 실시하고 제재한 건수는 5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5년간 관련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을 증권사에 제시한 적도 없었다. 

증권사 전산장애 관련 소비자 민원 해결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공식적인 보도자료에도 드러난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서버 과부화로 로그인 접속이 되지 않아 매매주문을 못해 발생한 손실에 대해 ‘주문의사를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전산장애로 로그인조차 할 수 없는데 주문의사를 어떻게 입증하라는건지 의문이다. HTS·MTS 접속장애로 인한 피해 관련 민원처리 결과를 보면 전산장애 발생 시 보상기준을 ‘증권사 홈페이지’로 안내했다. 소비자 민원 해결에 앞장서야 할 금감원이 증권사 뒤로 숨은 모양새다. 주식시장 거래가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된 분위기 속에서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소비자 보호 행보가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