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월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통화 정상화 단계에 돌입했다. 이 총재의 임기는 내년 3월 끝나는 만큼 전문가들은 이 총재가 퇴임하기 이전에 기준금리를 연 1.25% 이상 올려 15개월동안 고집해온 제로금리에 대한 출구전략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은 이 총재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제로금리 시대를 끝내기 위한 첫발을 뗐다. 2년9개월 간 이어져 온 초저금리 기조를 끊고 통화 정상화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시점을 둘러싼 논란도 인다. 15개월 연속 제로금리를 고집하다가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시중자금이 과도하게 몰리고 가계 빚은 사상 처음으로 1800조원을 넘어서는 등 자산시장의 불균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는 이유에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확장 재정정책을 펴는 정부의 입김에 휘둘렸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임기가 7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 총재가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그동안의 제로금리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출구전략’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주열의 과제, 물가안정과 가계부채
“최근 자산시장으로 자금 쏠림과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불균형 위험이 누적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성장·물가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이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3일, 이주열 총재는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첫 회동을 가지며 이같이 밝혔다. 당장 이 총재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높아지는 물가 상승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이미 부풀 대로 부푼 가계부채를 줄이는 것이다. 그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두 문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회복에 방점을 찍었던 정부 정책과 발맞춰왔던 ‘저금리 정책’의 부산물로도 해석되고 있어서다. 이 총재 임기는 문재인 정부가 막을 내리는 시점과 비슷한 내년 3월 말. 차기 정부와 신임 총재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총재는 그 안에 최대한 금리를 올리려 할 것이란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이 총재는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0.75%로 한 번에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했다. 이후 같은 해 5월 추가로 낮춰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인 0.5%로 떨어졌다. 단 두 달 만에 기준금리가 0.75%포인트 이상 떨어진 것은 기준금리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두 번째.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0월 열린 임시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5.00%에서 4.25%로 0.75%포인트 내린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역사상 손에 꼽을 만큼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성과는 커녕 오히려 시장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저금리로 시중에 풀린 돈은 실제 민간소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뼈아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인 광의의 통화량(M2)은 지난 6월 말 기준 3409조1432억원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0.5%까지 낮춘 지난해 5월 말과 비교하면 13개월 만에 356조60913억원 늘었다. 문제는 이 돈이 시중에서 제대로 돌지 않고 고여있었다는 점이다. 시중에 돈이 얼마나 순환되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지난해 3월 15.5에서 올 6월 14.22까지 떨어져 최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통화승수는 광의통화량(M2)을 본원통화량으로 나눈 값으로 중앙은행이 화폐 1원을 공급했을 때 시중 통화량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나타낸다.
그래픽=김영찬 기자
이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와 한은이 사실상 정책 공조를 한 결과 저금리로 시중에 풀린 돈이 소비가 아닌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으로 흘러갔음을 시사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중에 풀린 돈이 기업 자금 등 경제에 돌아다녀야 함에도 주식과 비트코인 등 개인들이 가계자산을 증식하는데 들어가 저금리 기조가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효과가 사실상 없었다”며 “시중 유동성이 기업 경기 개선으로 이어지고 고용이 늘어나는 등 순기능이 나타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내년 초까지 금리 인상, 저소득·자영업자 고통 가중
경기회복에 사활을 건 정부의 눈치를 살피다가 한은이 각종 부작용에도 무리하게 저금리시대를 15개월동안 고수해왔다는 평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발언을 거듭하는 등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속에서 한은은 사실상 독립기구로서의 자율성을 온전히 지켜내기 힘든 여건이었다. 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의 인적 구성 또한 ‘모피아’의 입김이 충분히 작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총재, 부총재를 제외한 5명 금융통화위원 중 3명은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은행연합회 회장의 추천을 1명씩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금리 결정에 모피아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8월 금통위 회의를 며칠 앞두고 기준금리 인상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은 ‘눈치보는 한은’의 이미지를 굳히게 했다. 이번 금리 인상마저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춘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주식 등에 걸친 자산 거품을 꺼뜨려야 하지만 생계형 대출을 받은 저소득·저신용자와 자영업자 등이 이자 부담 증가와 같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하면 지난해 1분위(소득 하위 20%)의 평균 금융부채는 1182만원으로 전년대비 19.9% 급증했다. 같은 기간 2~6%대였던 2~5분위 평균 금융부채 증가율보다 증가세가 매우 컸다. 1분위의 벌이도 변변치 않았다. 올 2분기 1분위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96만6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3% 줄어 2~4분위의 감소율(0.7~3.1%)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이들의 소득은 줄었지만 지출은 오히려 전년동기보다 7.0%나 늘었다.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들의 이자부담이 늘면 생존마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을 지체할수록 경제 정상화는 더뎌지고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인상 속도를 높여 정상궤도에 올려놔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 11월 연 1% 올린 이후 내년 2월 추가 인상을 단행해 이주열 총재가 퇴임할 때쯤 기준금리는 연 1.25%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집값 잡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공급이 늘어나기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책적으로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대출 조이기와 기준금리 인상 외엔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3월 기준금리 0.5%포인트 빅컷은 과한 측면 있었는데 사실상 제로금리에 따른 효과는 미미했고 빚만 비대해졌다”며 “이 총재의 남은 임기 안에 기준금리를 두번에 걸쳐 연 1.5%까지 올려야 하지만 이마저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