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전세자금대출을 분할상환하는 대출자에게 한도를 늘려주거나 금리를 내려주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이를 의무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의 한 은행 앞에 대출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사진=뉴스1
금융당국이 전세자금대출을 분할상환하는 대출자에게 한도를 늘려주거나 금리를 내려주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이를 의무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셋값 급등에 전세대출 이자도 내기 빠듯한 무주택 서민들이 당장 갚아야 할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자 금융당국이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8일 금융권에서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사실상 전면 확대한다는 내용과 관련해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며 "앞으로도 의무화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분할상환 해야 가계대출 증가세 꺾인다 판단한 금융위
앞서 금융위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통해 내년 1월부터 전세대출의 분할상환을 유도하고 이를 통한 인센티브를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센티브 확대와 함께 전세대출 분할 상환 우수 금융사에 정책모기지 배정을 우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일 열린 ‘가계부채 관리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도 금융위는 "해외 주요국은 분할상환 대출이 관행화됐다"며 "국내 가계대출 관행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미국과 영국은 거의 모든 가계대출에 분할상환을 적용하며 호주는 일시상환 비중을 3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금융위는 분할상환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누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분할상환이 의무화된 은행권 개별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16년말 276조2000억원에서 지난 9월말 269조4000억원으로 0.2% 감소했다. 반면 가계부채 잔액은 같은 기간 1184조원에서 1613조4000억원으로 36.3% 늘었다는 분석이다.
이자에 원금까지 금융비용 증가 우려
이처럼 금융당국이 분할상환 유도를 강조하면서 금융권에선 사실상 분할상환 의무화가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지난달 25일부터 일부 신규 전세대출에 대해 '5% 분할 상환'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예를 들어 2년 약정으로 2억원의 전세대출을 신규로 받을 경우 24개월에 걸쳐 1000만원의 원금을 나눠내야 하는 것이다.

전세대출 분할상환이 적용되면 대출자 입장에선 이자에다 원금까지 갚아야 하기 때문에 매월 내야 하는 금융비용이 늘어나 가처분소득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연 3.5%의 금리로 전세대출 2억원을 받았던 김씨의 경우 만기일시상환이면 매월 58만3000원의 이자만 내면 됐지만 여기에 원금의 5%(1000만원)를 분할상환하면 41만6000원의 원금도 내야 해 은행에 매월 내야 하는 금액이 약 100만원으로 71.5% 늘어난다.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 입장에선 그만큼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어 생활비를 줄여야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연 4%를 넘어 이자부담도 커지고 있다. 전셋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오르는데다 금융비용이 늘어나면 가계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권고하는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정책모기지 배정을 확대한다고 한만큼 금융사 입장에선 분할상환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사실상 의무화되는 단계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