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0일 대전시청 앞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대전지역 시민단체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 사진=뉴스1
지난 17일 대전 서구 둔산로 시청 앞.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근조화환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반대편에는 '기업은 모여들고 일자리는 늘어나고'라는 문구가 새겨진 통합 '찬성' 현수막이 늘어섰다.
대전의 강남으로 불리는 서구 둔산동 한 아파트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전·충남 통합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일극체제를 대전·충남 등 다극체제로 전환한다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대전 지역에 어떤 이익이 있을지 체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별시가 만들어질 경우 충남 중심의 행정체계 구축을 우려하는 이들도 다수였다.

치과의사 김보람씨(39)는 "대전·충남이 영남이나 호남과 달리 지역색이 옅다는 의미는 실리에 따라 정치적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충남대전통합특별시'는 대전보단 충남을 중심으로 한 행정통합인 만큼 지지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특별시청을 충남에 두는 형태로는 대전 시민은 '손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해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 달성 등 자본시장 정상화와 같은 정책 성과를 보면서 6·3 지방선거에 힘을 실어줄까도 생각했지만 행정통합 추진 결과를 봐야 판단이 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40대 시민은 "대전과 충남을 합쳤을 때 지역민들이 어떤 실익을 얻을 수 있는지 정보가 제한적"이라며 "여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통합을 강행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인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밀어주는 듯한 인상이 행정통합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인상을 준다"고 했다.

대전·충남 지역은 지방선거에서 '여당 프리미엄'이 붙는 곳인데, 여당이 행정통합을 강행하면서 반감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허태정 시장이 당선됐고, 대전시의회 22석 가운데 21석을 민주당이 가져갔다. 2022년 윤석열 정부 들어 치러진 선거에선 국민의힘 소속 이장우 시장이 당선됐으며 시의회 22석 가운데 18석을 국민의힘이 확보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4일 강행 처리 방침을 밝힌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국방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 내용. / 그래픽=강지호 기자
반면 대전이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통합은 가야 할 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대덕연구단지 기업에서 근무하는 박승주씨(34)는 "지역 소멸이 가속화하는 시점에 각 지방자치단체를 '메가시티'로 만들어 자치권을 부여·강화하는 방향에 동의한다"며 "다만 시민의 이해와 공감 없이 행정통합이 추진돼 지역 내 반감이 큰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가까운 천안·아산 지역 뿐 아니라 충남도청이 위치한 내포시(홍성·예산에 조성된 신도시) 등 지역민들은 통합을 반기는 모습이다. 내포에 거주하는 50대 시민은 "인적·물적 자산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수도권 공화국'을 바꾸려면 지역이 뭉쳐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지역 소멸을 막고 지역별 특화산업 육성 등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주도 성장을 위해 행정통합이 불가피하더라도 지역민의 이해와 공감이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준현 중앙대 교수는 "행정통합에서 주민 의견 수렴은 필요하며 정치적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시도 통합 단위에선 의견이 어느정도 성숙돼 있으면 주민의 대표인 의회의 의견 수렴·동의 절차로 갈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충남·대전, 광주·전남, 대구·경북 통합 특별법 3개를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국방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충남대전통합특별법)은 지난 12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고,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남긴 상태다.

다만 대전시의회와 충남도의회는 지난 19일 각각 임시회를 열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결한 특별법안에 따른 행정구역 통합 추진에 대한 의견 청취 건'을 상정해 반대 의견으로 가결했다. 양 시·도의회는 모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

민주당은 수도권 일극체제를 벗어나려면 3개 통합 특별법 처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달 말 입법이 이뤄져야 6월3일 지방선거에서 충남대전통합특별시(약칭 대전특별시) 시장을 뽑을 수 있어서다.

민주당은 360만 인구의 대전특별시를 조성해 4년간 20조원의 자율 예산을 배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광역의 권한을 읍·면·동·마을 단위까지 대폭 이양해 자치분권 모델을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또 충남의 산업 인프라와 대전의 과학기술·국방 전문성을 결합해 '경제·과학·국방 중심도시'로 조성한다는 목표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0일 대전 유성구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뒤 이동하며 졸업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 왼쪽으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보인다. / 사진=뉴시스
그러나 일각에선 산업적 측면이 주로 부각되고 있는 대전특별시의 방향 탓에 거점 도시 이외 주변 시골마을의 공동화(空洞化)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를 위해선 교통체계 개편은 물론 읍·면·동·마을 단위에 맞는 의료·교육 인프라 확충 뿐 아니라 지역 특화산업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과 독일의 선례는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2010년 12월 인구 감소와 경제 저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자치법에 근거해 '간사이 광역연합'을 출범했다.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체제를 벗어나 일본 최초의 광역 연합체를 만든 것이다.

이 연합체에는 ▲오사카부 ▲교토부 ▲효고현 ▲시가현 ▲오사카시 ▲사카이시 ▲교토시 ▲고베시 등 총 12개 지자체가 참여한다. 이들은 지자체의 사무 중복을 줄여 예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예컨대 각 지자체에서 구매·운영이 어려운 닥터헬기 등을 공동 구매해 간사이 지역의 의료 공백을 커버하고 있다. 지자체가 수행하던 해외 투자 유치도 간사이 브랜드로 통합했다.

독일의 경우 1920년 에센, 도르트문트 등 공업지대의 11개 시와 4개 군을 통합해 '루르 지역 연합'(RVR)을 출범했다. 개별 도시들이 집행하던 광역 교통망 확충, 폐기물 처리 등을 통합 처리했고 행정 비용을 약 15~20%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절감된 예산은 첨단 신산업 육성 펀드로 재투자했다.

전문가들은 행정통합이 성공하려면 지방으로 예산권을 이양하는 등 강력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준현 교수는 "20조원은 중앙에서 받아오는 구조로 지속가능한 체계는 아니다"면서도 "예산은 지역의 특화 산업 생태계 구축에 써야 하고, 이 생태계에서 추후 세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지방이 스스로 브랜딩하고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자체가 예산을 직접 편성하고 집행할 수 있는 실질적 예산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의 공모 사업에 매달려 예산을 따오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독창성을 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