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언론과 언중에 떠도는 이 기현상을 아예 어문 규정에 추가해 줄 것을 국립국어원에 제안한다. '반농담'이다. 이런저런 말에 하도 'K'가 붙다 보니 살짝 어지러워서 그런다. 요즘은 또 'K헤리티지'란 말이 추가됐다. 케이팝 그룹이 개량된 한복이나 노리개를 착용하고 화보나 영상을 찍는 유행, 국립중앙박물관의 재치 있는 기념품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트렌드에 착안한 말로 보인다.
'heritage'가 '유산'이니 'K헤리티지'는 한국 문화유산이라 해도 충분하다. 'K 접두어 현상'은 'K방산'이나 'K뷰티'처럼 그 분야에서 해외가 한국을 주목하거나, 수출이 잘 되든가, 아니면 젊은 층이 뜻밖의 한국적인 뭔가에 열광할 때 주로 발생한다. 이젠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까지 이 말을 갖다 쓴다. 두 기관은 지난달 30일 'K헤리티지 스테이지' 공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K헤리티지'건 '국가 문화유산'이건 우리 전통문화가 조명받는 현상은 어쨌든 반갑다. 스마트폰과 숏폼 게시물을 통해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영상에만 빠지기 쉬운 시대다. 세월의 나이테가 쌓여 그윽한 우리의 오랜 고전을 돌아보는 물결은 그래서 더 의미 있다. 최근엔 케이팝 최대 그룹인 방탄소년단이 'ARIRANG' 앨범을 내서 미국과 영국 차트 1위에 올렸다. 세계 가수 최초로 유튜브 공식 채널 구독자 수 1억 명을 돌파한 그룹 블랙핑크는 새 앨범 'DEADLINE'을 내면서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업했다. 멤버들이 전시 해설을 맡거나 박물관 공간 일부를 블랙핑크의 상징색으로 꾸미고 신곡이 흘러나오게 했다.
하지만 'K헤리티지'가 때론 제품과 양념으로만 소비되는 듯해 아쉬울 때도 있다. 또, '한국적'이란 수식어로 상찬받는 콘텐츠 속에서 실상은 한중일 문화가 정체불명으로 뒤섞인 서양 관점의 오리엔털리즘 범벅을 마주하게 되는 때도 왕왕 있다. 해외 팬들의 이국 취향을 자극하는 소품이나 장치로만 사용되는 것이다.
국가 홍보, 방문객과 매출 증대, 유튜브 조회수와 구독자 수 증가 등을 내세우면서 국가 기관이 이런 흐름에 동참하기도 한다. 지난해 국가유산청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탈, 춤으로 잇다' 영상은 33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올해 초 열린 문화유산 이수자 간담회에서는 전통무용인들의 성토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유명 댄서를 내세우고 탈이 등장했다 뿐이지, 봉산탈춤 특유의 춤 선은 어찌 된 일인지 영상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봉.산.탈.춤' 네 글자를 알렸다고는 할 수 있어도 독특하고 아름다운 우리 춤의 매력을 알리는 데는 실패한 콘텐츠"라고 말했다.
우리 전통 유산이 어떤 식으로든 호명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미학이 거세된 채 명칭과 인상만 알려지는 것은 공허하다. 요즘처럼 'K컬처'가 주목받는 시대엔 그 공허가 더 안타깝다. 세계인은 물론이고 전통에 호기심을 갖게 된 한국인에게도 그 맥락과 매력을 알릴 절호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국악인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다. 이름만 대면 알 케이팝 녹음에 연주자 겸 작곡자로 참여했다가 저작권 배분을 받지 못했다는 것. 새로 창작된 국악 선율이 절묘하게 주효한 글로벌 히트곡이었음에도 말이다. 힙합, 전자음악 편곡을 맡은 프로듀서진이 참여 국악인 모두를 작곡가 크레딧에서 빼버렸다고 한다. 엄연한 창작을 '어차피 국악이 비슷비슷하게 들리는데, 이게 연주이지 작곡이냐'고 치부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진지한 공동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 독특한 장치나 이국적 양념쯤으로 생각했다는 얘기다.
전통문화를 구성하는 유형 문화, 무형 문화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개량한복, 뮷즈 같은 제품형 전통문화, 해외 쇼핑몰에서도 쉽게 복제해 팔 수 있는 물품은 각광받는 가운데 복제가 힘든 고유의 문화는 적당히 넘어가는 건 아닌지…. 전통문화가 'K컬처'란 산업적 강령의 작은 노리개 정도에 그치는 곳은 없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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