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무섭노' 발언을 일베식 표현이라고 비판했던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가 공개 사과했다. 방송에 나온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쓰였던 '와이리 무섭노'라는 표현에서 '와이리'를 생략하는 것이 젊은 세대 관행인데 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충분한 확인 없이 특정 표현을 혐오의 상징으로 단정하고 정치적 공방을 부추겼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이번 사과는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의 응원 구호로 촉발된 혐오 표현 논란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시작된 논란에 정치권이 앞다퉈 뛰어들고, 더욱 자극적이면서 날카로운 용어로 논란을 증폭시키는 악순환 고리가 일상화됐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갈등 증폭 사회'라는 주제로 3회에 걸쳐 보도한 '시대 리포트'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섭노 공방, GS25와 넥슨의 집게 손 논란, 배우 조진웅의 과거 이력 문제 등에서 정치권이 말 폭탄을 던지며 싸우는 동안 청소년의 혐오 표현 노출, 젠더 갈등 해소, 유명인의 사회적 책임 등 본질적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사회 이슈의 소모적 정치화가 말싸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무조정실이 한 대학에 발주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념 갈등으로 집회·시위 참가자가 늘면서 이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생기는 손실이 지난 32년간 1981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정치권과 지도층의 변화를 먼저 주문하고 있다. 국민통합위원회 조사에서 시민 응답자 25%는 '정치권이 지지층 결집과 대립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갈등을 활용한다'고 답했다. 냉정한 평가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충분한 사실 확인과 전문가 의견을 거쳐 입장을 내놓고, 오류가 있으면 즉시 바로잡는 절차와 관행부터 마련돼야 한다.
근본적으로 혐오 표현의 생성과 일상화를 막기 위해선 체계적 교육과 함께 소셜미디어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예컨대 미국 남가주대(USC) 쇼아 재단은 홀로코스트, 르완다학살 같은 역사적 사건을 놓고 생존자와 목격자 증언을 학생들에게 들려준 뒤 토론을 통해 다원적 관점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 소셜미디어 역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유해한 표현을 더욱 적극적으로 걸러내 경고하고, 삭제하며, 반복 시 제재할 필요가 있다. 정치와 교육, 플랫폼이 함께 갈등을 줄이는 구조를 끊임없이 숙의하고 이를 사회적 제도와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갈등 증폭의 진앙이 되어온 정치권부터 깊이 반성하고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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