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적으로 조직화·지능화되는 사기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체계 구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남아를 거점으로 한 스캠 조직 확산과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 등 범죄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단일 국가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3회 금융범죄예방을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 홍지인
초국가적으로 조직화·지능화되는 사기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체계 구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남아를 거점으로 한 스캠(사기) 조직 확산과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 등 범죄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단일 국가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제3회 금융범죄예방을 위한 정책세미나'를 열고 초국가 사기범죄 대응을 위한 공공과 민간 협력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축사를 맡은 홍석기 경찰청 수사국장은 "최근 사기범죄는 조직화·국제화되며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국제 공조와 민관 협력이 결합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N·영국·금융위 "사기범죄, 국제 공조 없이는 대응 불가"
국제기구는 사기범죄 대응의 핵심을 '공통 규범'과 '수사 협력 체계'로 제시했다.

글렌 프리차드 UNODC 사이버범죄 책임자는 "사이버범죄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범죄 생태계의 문제이며, 한 국가의 법과 수사만으로는 절대 대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미 넘어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2024년 채택된 사이버범죄 협약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글로벌 기준으로, 불법 접근, 데이터 침해, 온라인 사기 등 주요 범죄를 공통 기준으로 정의하고 전자증거 확보와 국제 공조 수사 절차까지 포함하고 있다"며 "특히 전자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쉽게 사라지는 만큼 각국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사기범죄의 확산 정도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에블린 팡 영국 내무부 정책자문관은 "영국에서는 전체 범죄 중 약 45%가 사기이며, 이 가운데 70%는 해외와 연관돼 있는 범죄"라며 "사기범죄는 이미 일상적인 범죄를 넘어 국가 경제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위험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범죄는 특정 기관이나 국가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정부, 수사기관, 금융회사, 통신사, 빅테크 기업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통합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며 "향후 3년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온라인 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 협력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범죄 고도화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김태훈 금융위원회 금융안전과장은 "최근 보이스피싱은 단순 전화 사기를 넘어 장기간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시나리오형 범죄로 진화했다"며 "범죄 조직은 피해자의 직장, 금융거래 정보, 생활 패턴 등을 사전에 파악해 신뢰를 형성한 뒤 특정 시점에 자금을 이체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 공유 체계 구축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김태훈 과장은 "악성 앱을 설치해 금융당국이나 경찰과의 연락을 차단하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고도화됐다"며 "금융·통신·가상자산 등 업권 간 경계를 넘나드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유 체계 구축과 AI 기반 탐지 역량 강화가 핵심 과제"라고 언급했다.

캄보디아 스캠 기지 확산…"범죄조직, 기업처럼 분업화"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범죄 거점에서는 사기범죄의 구조적 변화가 확인됐다.

크리스틴 바렐 미국 FBI 수사관은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스캠 조직은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모집, 운영, 자금관리, 기술 지원까지 역할이 분화된 기업형 구조를 갖고 있다"며 "조직 내부는 일반 기업과 유사한 수준으로 체계화돼 있고, 인신매매를 통해 확보한 인력을 활용하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가상자산과 글로벌 결제망을 활용해 자금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구조가 결합되면서 범죄 수익은 여러 국가를 거쳐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추적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피해는 다수 국가에서 발생하지만 범죄 조직은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어 단일 국가의 수사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는 민관 협력 기반 대응 모델을 제시했다. 아일린 얍 싱가포르 경찰청 부국장은 "사기 대응은 경찰만의 역할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며 "정부, 금융권, 통신사, 플랫폼 기업, 시민까지 참여하는 협력 구조를 구축해 예방, 탐지, 차단, 피해금 환수, 교육까지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80개 이상의 기관이 참여하는 협력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실시간 정보 공유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협력이 사기 대응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범죄 거점 이동과 조직화 흐름이 확인됐다. 정수온 경찰청 계장은 "라오스 등 기존 범죄 거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며 "현재는 다국적 조직 형태로 확대되면서 금융기관 사칭, 로맨스 스캠, 투자 사기 등 다양한 유형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 자금세탁 조직과 연계된 구조까지 형성되면서 범죄 생태계 자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작동하고 있다"며 "해외 거점을 둔 범죄 특성상 국제 공조 수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AI·데이터로 맞선다…금융권 대응 패러다임 전환
금융권과 민간에서는 기술 기반 대응 필요성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민재호 카카오뱅크 FDS 팀장은 "기존 규칙 기반 탐지 방식은 특정 패턴을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에 비정형·복합 패턴으로 진화한 최근 사기 수법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이제는 거래 데이터뿐 아니라 접속 기기, 위치, 이용 패턴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실시간 행동 기반 탐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I 기반 분석을 통해 사전에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않으면 피해를 막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안 구조 전반의 변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조민기 SAS코리아 상무는 "현재 금융권 보안은 단말기 중심, 사후 대응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어 급변하는 범죄 수법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망 분리 환경에서는 외부 위협 정보와의 실시간 연동이 제한되면서 대응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외부 데이터와 AI를 결합한 서버 중심 통합 탐지 체계로 전환하고, 실시간 분석 기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 영역에서도 데이터 기반 대응이 강조됐다. 이승범 코스콤 전무는 "주가조작은 통정매매, 허수호가, 시세조종 정보 유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교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거래 패턴 역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며 "이상 거래 패턴을 조기에 포착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감시 체계 고도화가 핵심 대응 수단"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분야에서는 자금 추적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김영석 보난자팩토리 대표는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 이동은 속도가 빠르고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한 번 흐름을 놓치면 추적이 매우 어려워진다"며 "캄보디아 거래소를 경유한 자금세탁 흐름을 사전에 포착해 차단한 사례처럼 민관이 동시에 정보를 공유해야 범죄 자금 흐름을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