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 K방산은 유례없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선 수주를 둘러싼 '집안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경쟁 기업 간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한 소송전이 잇따라 사업 지연은 부지기수가 됐다.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이 대표적이다. HD현대와 한화오션 간 갈등으로 2년 넘게 지연된 데 이어 최근 HD현대가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추가 소송전으로 확대됐다.
육군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도 평가 방식을 둘러싸고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립하며 2년여간 표류했다.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 역시 경쟁에서 탈락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갈등을 특정 기업의 '몽니'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방산 수주전은 대개 소수점 단위의 미세한 점수 차로 당락이 갈리는데 결과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다.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임에도 보상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승자독식 구조가 업체 간 갈등을 부르는 핵심이다.
방산 기업들은 일 년에 몇 안 되는 수주에 막대한 개발비와 인력을 투입한다. 수주 실패는 곧 생산 공백과 숙련 인력 유휴화로 이어지고 투자 비용은 매몰 비용으로 남는다. 국내 운용 실적이 없으면 수출도 쉽지 않다. 수주 승패가 기업의 장기 생존을 좌우하면서 결과를 뒤집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실정이다.
반복되는 출혈 경쟁을 끊기 위한 해법은 복수낙찰제다. 복수낙찰제는 경쟁 입찰에서 둘 이상의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2024년 3월 국가계약법 제10조 제4항에 도입되며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방위산업 분야에서는 아직 활용된 사례가 없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도 지난해 1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복수낙찰제 도입을 건의한 바 있다. 이 청장은 "무기 체계별로 대체로 2개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성능이나 국익 측면에서 과당 경쟁의 폐해가 많다"며 "복수 낙찰을 통해 서로 조정해가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복수낙찰제를 도입하면 단일 업체 선정에 따른 공급망 불안, 일정 차질 등의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수주를 위해 연구개발을 지속해온 기업들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기술 개발의 연속성도 확보된다. 특정 기업으로 역량이 쏠리는 구조를 완화하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방위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제도 도입에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맞섰다. 책임 소재 등 후속 부작용을 경계하는 지적도 일리가 있지만 사업 지연이 일상화된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더 큰 손실이다.
현상 유지는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조원대 해외 수주전에서 K방산이 '원팀'으로 결집하기 위해서라도 소모적인 내부 갈등은 멈춰야 한다. 승자독식을 넘어 실력을 갖춘 2등에게도 은메달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등도 언젠가는 1등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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