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진 조국 피렌체를 위해 카리스마있는 지도자를 원했다. 필요할 때는 권모술수를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위기 극복의 한시적인 수단일 뿐이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이다. 그는 고대 로마 공화정을 정치의 모범으로 삼았다.
공화주의는 국가가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이다. 이해관계의 대립이 대화로 조율되면 법률로 만들어진다. 그렇지 못하면 분열과 충돌을 거쳐 내란으로까지 이어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잘 살아가야 하기에 '공화(共和)'이다. 공존은 서로를 살피는 데서 가능하다. 배타적 사익과 권력 추구는 공화주의가 가장 반대하는 주종적 지배관계를 낳는다. 공동선의 추구가 중요한 이유이다. 공동선은 권력자나 승리한 일방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같이 찾아가는 과정과 그 끝에 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 정치의 문제는 공화주의의 부재에 있었다. 갈등의 증폭과 대립의 양산이 지속되었다. 귀족 간의 대립이 끝나면, 귀족과 시민의 대결이, 그 이후에는 시민과 평민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승자는 법을 만들어 패자를 추방했다. 갈등과 대립은 말 대신 무기로 해결되었다. 이를 서술한 것이 그의 『피렌체사』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위기의 순간에 빛났던 지혜를 찾아 기술한다. 그것은 바로 '절반의 승리'이다. '절반의 승리'는 갈등이 무력 충돌로 치닫기 직전, 비에리 데 메디치가 양측을 중재하며 던진 메시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무기를 내려 놓으며, 나라의 안전을 구하는 것이 '절반의 승리'이다. 그 반대인 '완전한 승리'는 무기를 잡고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다. 그 귀결은 나라의 혼란이다. 그런데 '절반의 승리'는 현재의 승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이는 행운을 겸손하게 사용하는 것과 통한다. 성공은 능력 덕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얻은 것이다. 따라서 겸손하게 사용하지 않고 오만해지면 그 결과는 몰락이다.

또 다른 '절반의 승리'는 조반니 데 메디치가 재산세를 소급적용코자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말이다. 재산세를 새로 제정하자 부자들의 반발이 있었다. 법제정에 환호한 일반 시민들은 법을 소급 적용해 이전의 재산까지 조사코자 했다. 부자들은 분노했다. 조반니 데 메디치는 과거의 부당함을 새로운 법으로 바로잡는 데 만족하며,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강조했다. 승리 이상을 원하면 패배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절반의 승리'는 공화주의의 지혜를 보여준다. '완전한 승리'는 상대를 굴복시키고 제거하는 것이다. 배제 속에서 말로 소통하는 정치의 공간이 사라진다. 반면 '절반의 승리'는 상대와 공존하는 정치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극단의 정치가 유행하는 작금의 정치에 '절반의 승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인간에게 '절반의 승리'는 정말 어려운 실천의 지혜이다. 하지만 이는 생존의 지혜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배제하고 억누르는 '완전한 승리'는 분노와 증오의 기억 속에 복수의 정치로 패자를 인도한다. '완전한 승리'는 승자 측에도 내분을 일으켜 몰락을 자초하게 한다. 결국 '완전한 승리'는 승자와 패자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극단의 정치와 적대적 정치 그리고 타협 없는 정치에서 공화주의가 지닌 '절반의 성공'은 우리 모두가 공존공영하기 위한 정치적 지혜이자 기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