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인근 화물선들의 모습 /로이터=뉴스1
미국과 이란이 2주간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최후통첩 시한 만료를 불과 90분을 남기고서다. 극적인 휴전 소식에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릴 전망이다. 양국은 오는 10일 중재국 파키스탄에서 종전안을 놓고 대면 협상에 나선다.
파국을 피한 건 다행이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전장의 총성이 잦아든 지금부터가 오히려 더 치열한 '외교의 시간'이다. 당장 시급한 현안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이다. 교전 여파로 이곳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만 26척이다. 미국은 휴전을 발표하며 "즉각적이고 안전한 호르무즈 개방"을 강조했지만, 이란 정부는 '이란군과의 조율'을 단서로 달았다. 정부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한국 선박의 무사 통과를 최우선적으로 관철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점은 독소 조항이 종전안에 포함되는 시나리오다. 외신에 따르면 이번 휴전안에는 이란과 오만이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징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 내용이 종전안에도 들어간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제해협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부과하는 조치는 '항행의 자유'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 미국이 동맹국들에게조차 "알아서 하라"는 식의 입장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미 연대를 형성한 40여 개국과의 국제 공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


이번 중동 전쟁은 한국 경제가 에너지 수입 구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해협이 열렸다는 사실에 안주한다면 똑같은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신속하게 다른 수입원으로 갈아탈 수 있는 복원력을 키워야 한다.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상시화된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조달처를 확보하는 게 핵심 전략이 돼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화석연료를 아우르는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설계하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휴전 기간은 숨을 고르는 시간이 아니라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할 '골든 타임'이다.

미·이란 협상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선 전쟁 후를 내다보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이 이번 전쟁에서 충분한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여기에 중동 전개를 계기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미국의 통상 압력도 현재 진행형이다. 종전 후에는 대미투자, 주한미군 운용, 관세 및 통상, 중국 견제 동참 등 미국발 복합 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동맹과 국익을 다 지켜내는 정교한 외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 점에서 우리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과의 공조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공동 대응은 대미 협상력과 국제사회 발언권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이번 휴전은 한국 외교의 역량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호르무즈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이번 위기는 위기로 끝날 수도,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익 극대화라는 단일 대오로 이 엄중한 외교전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