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며칠 전 유럽의 이목을 집중시킨 헝가리 총선이 막을 내렸다. 존중과 자유의 당을 의미하는 티서당(TISZA)의 당수인 페테르 마자르(Peter Magyar)가 2010년 이후 장기집권을 이어온 빅토르 올반 총리 체제에 중대한 도전을 가한 선거였다. 선거 전부터 올반 총리의 패배를 예측하는 여론조사가 이어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이민문제를 둘러싸고 유럽연합의 공동 대응에서 빈번히 이탈해온 그의 행보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선 결과, 199개 의석 가운데 야당인 티서당이 136석을 확보하며 56석에 그친 집권당을 압도했다.
1980년대 말 동유럽 민주화 시점에 시작된 양국 간 비교적 짧은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 이번 선거를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주류 회원국도 아닌 동유럽 한 국가의 선거결과가 과연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럽연합의 향방과 한국의 대외전략을 동시에 되짚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선거는 유럽 내 민주주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극우민족주의 세력의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였다. 특히 올반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와 권력 집중을 통해 유럽연합이 강조해 온 법치와 자유, 인권의 가치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국제적 규범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마자르 당수가 승리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은 유럽연합의 내적 응집력을 강화하며, 가치지향적 유럽의 외교에 새로운 국면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올반 정부의 패배는 4년 넘게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마자르의 헝가리는 러시아와의 밀착을 줄이고 친유럽적 노선으로의 선회를 예고했다. 유럽연합으로서는 그동안의 내부 불협화음을 완화하고 보다 일관된 대외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분열된 유럽연합이 러시아의 전략적 행동 공간을 넓혀주었다면, 결집된 유럽연합은 그 반대로 러시아의 선택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곧바로 새로운 국제질서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마자르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인정했듯 유럽연합의 여러 회원국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특히 헝가리를 포함한 일부 국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회원국 간 이해관계 역시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헝가리의 정치적 변화만으로 러시아가 단기간 내 정책 방향을 급격히 전환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헝가리 총선 결과는 유럽연합 내 정치지형의 변화를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역시 단순한 관망자로 남기 어렵다. 오히려 유럽연합 내부의 정책 조율과 대외전략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이미 방산 수출을 통해 유럽의 안보 환경과 산업 구조에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의 방한은 유럽이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변화의 일면이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 산업을 중심으로 한 협력뿐 아니라 공급망 재편과 '디리스킹(de-risking)' 전략 속에서 유럽 내 한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헝가리 총선은 한-EU 관계의 재편을 촉진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은 미중 관계와 동북아 중심의 시각에 머물러선 안 된다. 유럽연합을 단순한 상품시장이나 문화적 교류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럽은 더 이상 주변 변수가 아니다. 한-EU 간 전략적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