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SF관에서 상설 운영 중인 '현대 전자 문명의 기반, 반도체'전에 전시된 반도체들. 글로벌 AI 업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 반도체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초호황기를 맞고 있다. /뉴스1
글로벌 인공지능(AI) 업체인 오픈AI가 24일 내놓은 새 AI 모델 GPT-5.5는 '전략적 자율 AI'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선 모델보다 뛰어난 추론·코딩 능력에 더해, 스스로 복잡한 과제를 장시간에 걸쳐 끝까지 수행하는 '에이전트' 기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간 개입만으로도 AI가 코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 등 전문 분야에서 AI 활용도가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목할 점은 기술의 진보 못지않게 그것을 둘러싼 경쟁의 속도다. GPT-5.5는 직전 모델 공개 열흘 만에, 경쟁사인 앤트로픽이 '클로드 오퍼스 4.7'을 내놓은 지 불과 8일 만에 나왔다. 맥락 이해와 코딩, 에이전트 능력을 강화한 최신 모델을 거의 1~2주 간격으로 쏟아낼 정도로 필사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투자 규모는 이 같은 경쟁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알파벳(구글)·MS·메타·아마존 등 글로벌 4대 빅테크는 AI 초격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연구·설비 등 투자를 지난해 4100억 달러(약 608조원)에서 올해 6740억 달러(약 999조)로 60% 이상 늘렸다. 한국의 연간 재정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글로벌 AI 산업이 '정글'과 같은 무한경쟁 체제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다.


사실 올 1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57조원과 37조원이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낸 배경에도 AI발 반도체 수요 급증이 자리하고 있다. AI의 추론 능력 강화와 에이전트 기능 확산이 고성능 칩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 반도체 산업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호황이 우리 내부 경쟁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중국의 추격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반도체 산업은 단순 설비 투자를 넘어 더욱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계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반도체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반도체 이후 성장 동력인 로봇과 전장 분야 투자 확대도 절실하다. 생산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피지컬 AI' 시대에 맞춰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기업이 이익을 냈다면 주주와 구성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기 성과에 안주하는 순간, 다음 사이클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미래 불황에 대비하고 신산업을 개척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전략적 투자로 돌려야 한다. 지금의 성과를 당장 '소비'하는 데 급급할 것인가, '미래'로 전환할 것인가.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여력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하느냐의 선택이 한국 경제의 향후 10년을 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