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고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기자가 만나는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정부 눈치를 보면서 "관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전격적인 약가 인하 규제가 그 단면이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지난 3월 제네릭(합성복제약) 가격을 오리지널의 45%(현행 53.55%)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11월 복지부가 건정심에서 인하 방침을 처음 공식화한 지 4개월 만이다. 하반기 시행을 앞둔 이 전격적인 조치를 두고 현장의 불신은 팽배하다.
일각에선 "복지부 관료들이 약가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약가 제도라면 거쳐야 할 협의와 공청회, 유예기간 등 공론화 과정이 생략되거나 축소돼 속전속결로 진행됐다는 게 이유다.
결국 건보 재정 효율화라는 명분 뒤에 관료의 편의주의적 행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약가 재편과 관련한 명확한 법적 근거나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가 안전한 규제를 선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호한 법 규정을 들어 가장 손쉬운 방식인 약가 통제로 기업에 비용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며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 결국 신약개발이라는 혁신의 싹이 잘릴 것"이라고 토로한다.
특정 정책을 넘어 보건의료 정책 전반의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사례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규제 완화론자였던 레이건은 재임 당시 시장 경쟁을 통해 약가를 낮추는 해치·왁스먼법을 제정했다. 제네릭 승인 절차는 간소화하되 신약 개발에 소요된 기간만큼 특허를 연장해 주는 당근을 병행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가격을 직접 억누르는 대신 진입 장벽을 낮춰 자율 경쟁을 유도하고 기업 손실은 제도적으로 보전해 준 것이다. 정부 규제 완화 철학과 약가 안정이라는 공공성이 결합해 미국의 호황을 견인한 혁신의 서막이었다. 최근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 주요국들도 바이오 규제 완화에 열을 올린다.
현 정부 역시 제약·바이오헬스 강국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엔진은 가동되는데 브레이크가 발목을 잡는 구조로는 어떤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규제 완화 구호가 이번에도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AI(인공지능) 패권 경쟁 속에서 바이오는 미래 최대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AI와 생명공학의 만남으로 제약·바이오 생태계는 10년 내 최소 수천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현재 반도체와 자동차 시장을 합친 규모마저 추월하는 거대한 신대륙이다.
한국이 황금알을 낳는 바이오시장 주도권을 잡으려면 관료사회부터 달라져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장과 협력하는 파트너로 전환해야 한다. 규제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한국의 관료주의가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천문학적인 기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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