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대중문화평론가
그들을 '오게' 하는 건 음악과 드라마이지만 그들을 '오래' 머물게 하는 건 그 너머에 있다.
지난 28일 에어비앤비가 서울 성동구에서 연 미디어 간담회 현장에 찾았다. 토론 사회자로 참가했다 여러 통찰을 얻어 왔다. 이날 에어비앤비는 한국을 방문한 해외 여행객 45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진행한 'K-컬처와 한국 여행' 설문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에 따르면, 'K-컬처가 한국 여행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 응답자는 무려 94%다.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가 실제로 대다수 여행객이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단순히 뮤직비디오에 나온 건물, 드라마에 나온 계단에 가서 인증샷만 찰칵 찍고 떠나는 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전체의 91%는 '진정한 현지 문화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92%는 K-팝을 넘어 음식, 역사, 자연 등 폭넓은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일까. 74%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한 서울 외 지역을 방문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3분의 2에 달하는 66%가 서울에서 대부분의 일정을 소화했다고 했다.


'동백꽃 필 무렵' '갯마을 차차차'를 보고 'Pohang'(경남 포항)을 검색해 보고, '도깨비'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Gochang'(전북 고창)을 찾아본 이라도 연계해서 즐길 다른 문화나 좋은 숙박 시설이 없다면 간다 해도 당일치기 인증샷 여행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봐도 그렇다. 해외 여행을 갈 때 공항에 면한 대도시를 거점으로 삼되, TV나 유튜브에서 본 근사한 풍광을 떠올리며 타 지역을 가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은 복잡한 교통편이나 다른 볼거리의 부재 때문에 기약 없는 '다음에…'만 뇌까린 게 부지기수다. 그 '다음'은 10년째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큰맘 먹고 나선 지역 여행이 반짝반짝한 수도의 야경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경우도 많다. 취재차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수도 오슬로보다 더 좋았던 건 멀리 서안에 자리한 고도(古都) 베르겐이었다. 옛 바이킹의 수도로서 알록달록한 브뤼겐의 구시가도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베르겐 고성(古城)에서 고색창연한 성벽과 노을을 배경으로 관람한 바이킹 포크 밴드 '바르드루나'와 팝가수 오로라의 합동 콘서트는 잊을 수 없다. 다음엔 특별한 공연이 있는 기간에 여러 날 숙소를 잡아 베르겐에 머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돌아온 뒤, '노르웨이 다녀왔어? 오슬로는 어때?'라 묻는 지인들에게 베르겐행을 추천한 게 십수 년간 헤아릴 수 없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해외 여행객들의 지역 관광 비율이 낮은 편이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다르다. 일본 소도시 여행이 한국인들에게도 중요한 화두일 정도다. 인프라와 홍보가 두텁다. 그럼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문화 콘텐츠를 통해 찾는 이가 절대다수인 나라인 만큼, 한반도를 거대한 '문화의 자기장'처럼 만드는 건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부터 지역 축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차별화된 축제는 드물다. TV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비슷비슷한 가수들을 섭외해 대동소이한 잔칫상을 차려낸다. 자국민들조차 시큰둥하다. 하지만 한국 문화를 조화롭게 차려낸 음악 축제도 이미 꽤 있다. 전북의 전주세계소리축제, 광주광역시의 ACC 엑스뮤직페스티벌은 우리 전통음악을 기반에 두되 해외의 첨단 음악, 실험 음악과 충돌하는 특별한 난장을 만든다. 며칠씩 이어지는 이런 축제를 지역 관광과 연계해 해외 관광객까지 끌어들인다면 어떨까. 숙박, 관광과 문화 체험 프로그램까지 연계해 'K-지역 관광/문화 체험'의 시험지로 써볼 만하다.

에어비앤비 토론 때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앙 씨의 이야기가 귓가에 생생하다. 최근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는 그는 "외국 친구들은 이제 한국인처럼 살아보기, 한국 문화 더 깊게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편의점에 들러도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컵라면에 치즈 소시지를 직접 넣어 녹여 먹고 싶어 한다"면서 "원주 한지테마파크에 가서 만들기 체험을 하고 더 나아가 한지에 기록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까지 알려주면 한국 문화와 역사를 자연스레 배우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의 입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음되는 게 무척 신기했다. 그렇다. 케이팝을 듣고 멀리 한국까지 날아온 이들을 더 오래 머물고, 더 깊게 느끼게 하는 힘. 5박이 10박이 되고, 5년이고 10년이고 한국 문화를 '파게' 만드는 그 무언가는 이제 우리가 설계하기 나름이다. 관광객 숫자가 는다고 당장의 그래프에만 집착하다 대충 흘려보내기엔 지금의 이 흐름이 너무 소중하다. 100년 뒤에도 한국 팬이 넘쳐나는 지구별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