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치인 피격은 초당적 규탄과 진상 규명의 문제였다. 지금은 질문의 순서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먼저 '누가 꾸몄나'를 묻는다. 눈앞의 장면보다 자신이 속한 진영의 서사가 먼저 작동하고, 파편적 단서들은 빠르게 엮여 그럴듯한 이야기로 굳어진다.
물론 경호의 허점이나 초기 혼선이 의심을 키웠다는 지적은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에서 정보가 엇갈리고 수정되는 일은 새롭지 않다. 달라진 것은 사건이 아니라 소비 방식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확인한 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결론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장면과 문장만 골라 취한다.
이 같은 패턴은 미국 정치에서 반복돼 왔다. 2024년 대선 유세 총격 사건 당시에는 반트럼프 진영의 조작설과, 트럼프 지지층의 배후설이 동시에 확산됐다. 트럼프 역시 2020년 대선 이후 부정선거 주장을 반복하며 불신의 언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작극 의혹의 중심에 섰다. 음모론은 특정 진영의 무기가 아니라, 결국 모두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임을 보여준다.
이 배경에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정보 생태계의 변화가 있다.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반응을 극대화하는 구조는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접하고, 정보의 공백은 편집된 영상과 확신에 찬 문장으로 채워진다. 이 과정에서 상대 진영은 점점 더 악의적이고 위협적인 집단으로 재구성된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총기 사건의 양상은 같지 않지만, 사건을 음모론적 서사로 소비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 주장, 대형 참사 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배후설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유튜브와 폐쇄형 메신저를 통해 유통되는 자극적 정보는 공적 제도와 사회적 신뢰를 서서히 잠식해 왔다. 분노와 의심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수익 구조와 결합하면서, 확증 편향은 하나의 시장처럼 작동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런 현상이 단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연구들은 어떤 미디어를 주된 정보원으로 소비하느냐가 음모론 수용 정도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한국방송학보』 3월호에 게재된 정낙원 교수(서울여대) 등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 유튜브 이용 빈도가 높을수록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신뢰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반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성 언론을 주된 정보원으로 이용하는 집단에서는 음모론 신뢰도가 뚜렷하게 낮게 나타났다. 전통 매체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다만 팩트체크와 교차 검증, 반론권 보장 등 저널리즘의 형식과 절차가 독성 정보의 확산을 늦추는 완충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논문에선 자신의 정치 성향과 다른 매체에 노출될수록 정치적 관용도가 높아지고, 상대 집단에 대한 위협 인식 역시 낮아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이는 우리에게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탈진실의 시대에 음모론의 범람을 막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각성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어떤 미디어 환경을 구축하고 소비할 것인가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의심이 아니라 더 느린 확인이다. 정치권은 근거 없이 불신을 동원하는 언어를 자제해야 하고, 언론은 속보 경쟁보다 검증과 맥락 제공이라는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게이트키핑은 낡은 권위가 아니라, 사실과 추측을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특히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다양한 시각을 전달하는 매체가 공론장의 역할을 회복할 때, 음모론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
총성은 한순간이지만, 그 뒤를 덮는 의심의 언어는 오래 남는다. 시민들이 사실보다 각본을 먼저 찾는 사회에서 진실은 설 자리를 잃는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꾸몄나'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 질문부터 하게 되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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