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여름 런던 도심에서 연일 은행원 시위가 열렸다. 파업을 동반했다. 준공무원으로 인식되던 은행원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전례 없던 사태였다. 여러 요구가 있었지만 핵심은 급여 인상이었다. 컴퓨터 보급 확산으로 업무가 전산화되기 시작한 때다. 은행 직원들은 새로운 일 처리 방식을 익혀야 했다. 단순 업무가 줄면서 업무 강도가 세졌다. 은행의 '효율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고용 안정성도 약해졌다. 영국 은행·보험·금융노조(BIFU)가 조합원들의 불만을 집단행동으로 조직했다. 이제 더 이상 단순 사무직이 아니니 전문직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노조 승리로 싸움이 끝났다. 급여가 평균 9% 인상됐다. 그때부터 바클레이즈·로이즈 등 영국 은행들이 지점·부서·개인에 대한 업무 평가를 시작했다. 일반 사무직이 아니고 전문직이라고 했으므로, 성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당연하다는 것이 은행 이사회 논리였다. 급여가 점차 '개별화' 됐다. 전통적인 연공+직급제가 허물어졌다. 노조 협상이 내 연봉에 미치는 영향이 확연히 줄었다. 노조 활동은 윗사람 눈치 보면서까지 할 일은 아닌 게 됐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주의가 늘었다. 급여에서 매달 나가는 조합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커졌다. 80% 수준이던 영국의 은행·보험 노조 가입률은 현재 12%(영국 정부 통계)다.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을 계기로 한국 국민 다수가 의문을 품었다. 해외의 삼성전자 비슷한 기업에서는 초호황 대박이 났을 때 성과급을 어떻게 주나? 영업 이익의 15% 정도를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곳이 있나? 성과급 때문에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하는 곳이 있나? 이런 질문들이 던져졌다. 언론이 삼성전자 경쟁사를 포함한 글로벌 빅테크를 살펴 보도했다. TSMC·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대상이다.

결과는 이렇다. 성과급의 상당 부분을 주식으로 준다. 통상 4년 정도의 매도 금지 기간을 정해서. 성과급은 급여 계약 때 조건과 계산 방식이 약속된다. 회사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지 않는 한 노조가 개입할 게 없다. 성과 평가는 조직과 개인으로 개별화 돼 있다. 이때의 조직은 팀 정도의 규모다. 전체 회사 수익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율은 회사에 따라 다르다. 15%가 넘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성과급 지급 방식이 글로벌 표준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의 성공은 벡터(힘의 방향+크기)의 합에 달려 있으며, 인재의 밀도가 그 합을 결정하고, 결국 '하드코어'가 핵심이다."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여기에서 하드코어는 특별한 성과를 내는 임직원을 일컫는다. 팔란티어를 만든 알렉스 카프는 회사의 핵심 인재를 아티스트, 일탈자(deviant), 선교사로 칭한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을 일궈내는 내부자를 A플레이어로 불렀다. 구글의 검색 엔진 개척자 앨런 유스터스는 "최고 수준 엔지니어의 가치는 평균적 기술자의 300배"라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는 "출중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평균적인 개발자에 비해 1만 배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글로벌 빅테크에는 전 직원이 비슷하게 나누는 성과급 제도가 없다. 창업자들 생각에 그 까닭의 답이 있다.
이재용 삼성 회장 자택 옆에 삼성전자 노조가 친 천막./사진=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지난달 29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 회장 집 옆에 천막을 쳤다. 앞에 이런 문구가 걸렸다. '우리가 천막을 친 이유는 단 하나, 내 옆의 동료가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성과급이, 결과적으로 총 급여가 불만스러워 직원이 다른 회사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는 뜻이다. 정말일까? 그렇다면 능력이 월등한 반도체 엔지니어가 대만·일본·미국, 나아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일률적인 보너스로 막을 수 있을까? '공정한 보상'의 저자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현재 삼성전자 부장급 미만 직원의 성과급은 개별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이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 국제 인재 쟁탈전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외국 반도체 회사와 경쟁한다. 초격차 기술력에 초격차 인재 대우는 필수적이다. 지금의 성과 배분 갈등은 결국 새로운 제도로 귀결될 것이다. 기존의 골고루 나누기가 존속되기 힘들다. 그때 노조가 '내 옆의 동료가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오늘의 주장을 잊지 않기 바란다. 그냥 동료가 아니라 우수한, 뛰어난 동료가 짐을 싸면 더 큰 문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