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의 호황으로 발생하는 역대급 '초과세수', 구조적 '초과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제도적 장치로 '국민배당금' 논의가 제기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2일 SNS를 통해 "한국이 구조적 희소성과 지속적 초과이윤을 기반으로 한 '기술독점경제에 가까운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AI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쌓아온 기반 위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익의 일부를 국민과 구조적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사례로는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등을 거론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AI 투자 열풍은 단순한 경기 반등을 넘어 산업 지형 자체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재정 운용의 기준을 다시 고민하자는 문제 제기 자체는 의미가 있다. 초과 세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 성장의 과실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방안을 고민하는 일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우선 '배당'이라는 표현부터 적절치 않다. 기업 활동의 성과를 국가가 공동 소유물처럼 재분배하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수 증가는 기업의 투자와 시장 경쟁의 결과다. 이를 정치가 임의로 배분할 수 있는 재원처럼 접근하면 투자 유인을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는 논란을 키울 수 있다. 특히 현금성 지원은 단기 체감 효과가 커 정치적 유혹과 결합하기 쉽다.
정책 의도 역시 보다 명확해야 한다. 해당 발언 직후 증시가 출렁인 것은 시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대한 '추가 과세'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새로운 횡재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늘어난 세수를 활용하자는 취지"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재정 메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시장 신호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해외 사례를 단순 원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북해 유전 수익을 국부펀드로 축적해 복지 재원으로 활용해온 노르웨이 모델은 자원 소득을 장기 금융자산으로 전환한 경우다. 기업 활동 과정에서 늘어난 법인세 수입을 재원으로 하는 우리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무엇보다 우리의 재정 여건은 넉넉하지 않다. 관리재정수지 적자와 빠르게 늘어난 국가채무를 감안하면 초과 세수가 들어온다고 해서 재정 규율까지 느슨해져서는 곤란하다. 초과 세수를 곳간에만 묶어두자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청년 고용, 저출생과 고령화 대응, 산업 전환에 필요한 교육과 기술 투자,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같은 구조 개혁 과제에 우선 투입돼야 한다. 그래야 일시적 호황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초과 세수 논의는 결국 재정 철학의 문제다. 더 많이 거둔 세금을 어떻게 미래의 힘으로 바꿀지, 그 원칙을 세우는 일이 '국민배당' 논쟁보다 앞서야 한다. 청와대는 논란이 커지자 "정책실장 개인 의견"이라고 했다. 이런 민감한 의제를 불쑥 던져놓고 '개인 의견'이라니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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