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들었지만 곧 복잡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입국 과정에서 여권을 스캔하는 순간 개인정보가 출입국 당국에 전달되고, 안면인식 기술과 AI가 행선지와 항공편 정보를 결합해 실시간으로 개인을 식별·안내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출입국 당국이 CCTV와 개인정보를 활용해 이상 행동을 사전에 탐지·예방하려 했지만, 안면인식 정보 활용과 목적 외 개인정보 사용 논란이 불거지며 시민단체 고발 끝에 사실상 중단됐다.
재작년 중국의 생성형 AI '딥시크(DeepSeek)' 등장은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강력한 규제 속에서도 중국이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한 것은,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동시에 우리는 중국처럼 개인정보를 AI 학습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 벽도 절감했다.
물론 중국의 AI 기술과 편리한 서비스를 부러워하는 시선은 있다. 그러나 CCTV 기반 안면인식으로 개인을 실시간 추적하거나, AI 발전을 이유로 국민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활용되는 사회까지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역시 과거에는 주민등록번호를 중심으로 방대한 개인정보가 국가 필요에 따라 수집·활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관련 관행들이 정비됐고, 개인정보보호법을 비롯한 제도도 체계화됐다. 지금 한국은 유럽연합(EU)과의 상호적정성 평가를 통해 유럽 수준의 개인정보보호 체계를 인정받는 국가가 됐다.
이처럼 개인정보보호와 민주주의는 발전의 궤를 함께해 왔다. 평상시에는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침해받는 것 중 하나가 개인정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민자 추방 정책에 항의 이메일을 보낸 한 변호사가 미국 국토안보부의 요구로 구글로부터 개인정보 제출 통지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소와 전화번호, 사회보장번호, 신용카드 정보까지 요구됐지만, 정작 이의를 제기하려 해도 담당 부서를 특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조차 9·11 이후 국가안보를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를 유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역시 코로나 시기 확진자 동선 공개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겪었다. 최근 미토스 사태에서 드러났듯, 이제는 공격과 방어 모두 AI가 수행하는 시대다. AI는 산업 경쟁력의 핵심일 뿐 아니라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 발전을 위해 개인정보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으려면 그들 수준의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국은 개발독재와 권위주의를 거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낸 드문 경험을 가진 나라다. 개인정보보호 역시 그 과정에서 어렵게 축적한 민주주의의 자산이다.
전체주의 국가는 개인정보보호를 발전의 장애물이나 최소한의 규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시민의 권리이자 사회적 자산으로 본다.
앞으로 AI 에이전트들이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시대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발전만을 이유로 무분별한 개인정보 활용을 허용한다면, 과거 전체주의 사회보다 더 강력한 감시와 통제의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AI 시대에도 개인정보보호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AI 산업 발전을 위해 학습 데이터 원본 활용을 허용하는 개인정보보호법상 AI 특례 조항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필요한 안전장치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경쟁력과 민주주의 가치가 충돌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한국이 이제는 개인정보보호와 혁신을 함께 담아낸 'K-AI' 모델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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