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뒤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천단을 돌아보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다. 관세 전쟁과 반도체·AI 기술 통제, 대만 문제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까지 최근 몇 년간 미·중 관계는 사실상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칠게 충돌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G2(주요 2개국) 관계의 새로운 관리 국면 가능성을 가늠할 시험대로 주목받았다.

9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정상은 '뼈 있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겉으로는 비교적 유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135분간 이어진 확대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패권국과 신흥국의 충돌)' 극복을 언급하며 "싸우면 모두가 상처 입는다. 우리는 적이 아니라 파트너가 돼 공동 번영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돌을 관리 가능한 공존 체제로 바꾸면서 미국의 견제와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의도가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질 것"이라며 "우리는 환상적인 관계이고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화답했다. 이란 전쟁 장기화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시적 성과가 절실한 트럼프로선 대두·쇠고기·항공기 판매 확대와 대규모 대미 투자, 무역 불균형 완화 등 경제적 실리를 우선한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문제, 한반도 문제 등도 논의됐지만 공개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해 "잘못 다루면 양국 관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강한 톤으로 경고했다. 미국과의 경제 교류와 대만 문제 등을 하나의 '패키지 협상' 틀로 묶어 향후 미·중 관계의 새 규범을 중국에 유리하게 설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협력은 세계에 큰 이익"이라고 하면서도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미·중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은 것은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경제·공급망·기술 패권을 둘러싼 충돌을 일단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려는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런 흐름이 향후 상당 기간 미·중 관계의 기본 방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자국 중심주의를 앞세운 G2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여전히 깔려 있다.


이런 미·중 신질서 모색이 현실화할 경우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미·중 갈등이 일정 부분 완화되면 우리 역시 중국과의 경제·산업 교류 확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배터리·소비재·문화 산업 등에서 숨통이 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미·중 갈등 국면에서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입었던 한국 제조업의 전략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정상은 15일 한 차례 더 정상회담을 갖는다. 공동 선언문이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국제질서가 협력과 견제, 공존과 경쟁이 동시에 작동하는 훨씬 복합적이고 난해한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질서를 짜는 G2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역시 국가 생존 공식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